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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태일이’ / 김은형

등록 2020-11-15 14:51수정 2020-11-16 02:41

‘당신을 영화제작자로 모십니다!’ 1994년 7월31일 <한겨레>에는 이런 카피의 5단 광고가 실렸다. ‘영화 전태일 제작위원회’가 실은 국민 모금 광고였다. 당시 이효인 평론가, 박광수 감독, 유인택 제작자 등이 전태일을 영화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지만 제작비를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문민정부가 출범했지만 ‘전태일’이 대중영화로 나오기는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박광수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극장에 걸리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업계 사람이 숱했다”고 회고했다.

문화계와 노동계 등 1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 지원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고심 끝에 나온 게 모금을 통해 시민들이 제작자로 참여한다는 아이디어였다. <한겨레>는 영화 제작과 후원 모집을 알리는 무료 지면 광고를 여러번 실었고 최종적으로 6692명이 2만원, 5만원, 10만원씩 십시일반으로 모은 후원금이 3억원 가까이 모였다. 이를 종잣돈으로 대우시네마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총제작비 15억원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전태일 열사 25주기에 즈음한 1995년 11월18일 개봉했다. 당시 극장 관계자들의 예상과 달리 관객들이 밀려들었다. 이 영화의 흥행을 예상하지 못한 채 다음 개봉작을 할리우드 수입사 쪽과 서둘러 계약했던 서울극장 등은 만원사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극장에서 내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듬해 초청받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엔딩 크레딧에 후원자 명단이 4분간 이어진 게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근 제작발표회를 한 애니메이션 <태일이>는 아예 처음부터 시민 참여로 출발했다. 2018년 11월 제작사 명필름이 제작을 알리면서 시작한 크라우드펀딩에 3천여명이 기부해 1억원의 초기 제작비가 모였다. 단순히 돈을 모으는 방법을 넘어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라는 취지를 알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각계 인사 166명이 나서 제작위원 1970명을 모으는 ‘태일이 친구들’ 운동을 시작했다. 1970은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해다. 내년 극장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잇는 감동의 엔딩 크레딧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은형 논설위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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