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상대편을 이론으로 이기기 위하여 (…)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 대는 논법.”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는 ‘궤변’이 철학 용어임을 말해준다.
궤변과 밀접한 철학 사조는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다. 궤변이 영어로 소피스트리(Sophistry)이다. 제논의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역설’ 같은 궤변을 남겼다. 거북이보다 10배 빠른 아킬레우스가 10m 앞에서 출발한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 아킬레우스가 10m 갈 동안 거북이는 1m 전진, 다시 그가 1m를 가면 거북이는 또 0.1m 앞서가는 식으로, 끝끝내 미세하게나마 뒤처진다는 주장이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궤변이지만, 당시 수학 수준으로는 논리적 반박이 어려웠다. 나중에 무한론이 정립되면서 논파가 가능해졌다.
동양에선 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인 명가의 일원 공손룡의 ‘백마비마’론이 유명하다. 백마를 탄 공손룡이 말의 통행세를 받으려는 관문지기에게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일설이 전한다. 관문지기는 “이게 말이 아니면 양이냐”며 한 방에 깼단다. 보편-특수의 범주를 흩뜨려 현실을 왜곡하려는 수작도 사실 앞에선 안 통한다.
철학 용어 궤변을 요즘은 일상적으로 쓴다. 거짓을 참으로 꾸미려는 시도가 잦아서일 게다. 가령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나경원 전 의원 아들의 고교 시절 서울대 대학원 연구 참여와 관련해 ‘연구 포스터 ‘제4 저자’ 표기는 부당한 저자 표시’라고 밝혔음에도, 나 전 의원이 “‘엄마 찬스’라는 비난은 번지수부터 틀렸다”고 주장하는 따위의 일이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빠 찬스’ 의혹과 비교하는 지적에 “제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가 있느냐, (…) 저와 제 가족이 사모펀드 갖고 돈 장난을 쳤느냐”고도 했다. ‘기회의 공정성’을 묻는데, 불법성의 범주로 치환해 반격한 것이다. 아빠 찬스를 ‘조국패스, 조로남불, 조럴해저드’라고 맹공할 때와 엄마 찬스 해명할 때 판이한 그의 주장에 ‘나로조불’(나경원이 하면 로맨스, 조국이 하면 불륜)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당연히 이런 주장은 “택배노동자 자녀도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느냐”(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는 사실의 반박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가 부인하는 범법 여부 또한 제대로 수사해야 분명해질 것이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