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훈 ㅣ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이번 소동은 베스트셀러 저자인 승려 혜민의 거처가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시작되었다. 유명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예능프로그램이었다. 그의 “남산뷰” 자택 정도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서 유난히 특출난 집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승려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한국인에게 출가수행자란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난이 쏟아졌다. 유튜버 크로커다일은 그가 “돈과 명예욕에 미친 땡중”이며 “무소유”는커녕 “풀소유”를 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조롱했다. 미국인 승려인 현각은 그를 “연예인일 뿐”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으며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일 뿐”이라 비판했다. 혜민의 참회와 활동중단 선언, 현각과의 화해 등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현대사회에서의 종교인 그리고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이다.
혜민에 대한 비판에서 중요한 축은 그가 ‘힐링’을 팔아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그가 운영하는 마음치유학교에서는 전통적인 명상이나 참선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플라워 테라피, 티 테라피 등 현대 영성(spirituality) 산업의 상품들이 거래된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타로카드나 레이키(靈氣)와 같은 점복, 주술들도 그런 종류의 영성 상품이다. (‘싱글남녀 인연찾기’ 같은 프로그램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혜민은 최근 이 시장의 첨단 분야인 모바일 명상 앱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 앱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해소해주며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전통적인 제도종교에서 매력을 찾지 못하고 공동체나 의례에 참여하지 않고도 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영성 상품을 찾는 것은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적인 현상이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교리에 공감할 수도 있고, 거룩한 의례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친밀한 공동체에 소속될 수도 있고, 깨달음과 진리를 추구할 수도 있는가 하면, 위안과 치유를 얻을 수도 있다. 전통적인 제도종교에서는 이런 경험들을 ‘패키지’로 구매해야 했다. 그러나 영성 산업은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서 ‘힐링’만을 따로 떼어내 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혜민이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구매하기 위해 우리는 불교 신자가 되거나 불교 교리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혜민이 이 분야의 총아가 된 데에는 그의 이중적인 지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나는 그가 하버드대 출신의 엘리트이자 수많은 유명인들과 교분을 맺고 있는 ‘셀럽’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 불교의 대표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승려’라는 종교적 지위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던 이 두 가지 위치가 이번 사건에서 충돌했다. 전통적인 제도종교가 가지고 있는 보수성과 현대 영성 종교가 가진 상업성 사이의 모순이 혜민이라는 개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한국인이 승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높은 도덕성을 가진 청빈한 출가수행자다. 성철, 법정 등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현대의 고승들은 그런 기대에 잘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그런 무소유의 화신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풀소유의 엘리트 사업가 승려가 있다. 이제 우리는 그가 상징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종교에서 거추장스럽고 시대착오적인 전통들을 걷어버리고 실용적인 “마음치유”만을 얻는 데 동의한다면 혜민이 고급주택에 살면서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을 비판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출가수행자와 같은 전문종교인에게 요구되는 규범들에 단순한 문화적 관행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면, 그리고 종교의 역할이 영성 산업이 판매하는 ‘힐링’ 이상이라고 믿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이 전통적인 제도종교들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붙잡고 고민해야 할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