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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의미 / 권김현영

등록 2020-11-24 16:25수정 2020-11-25 02:41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에서는 시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지난 3년간 3명의 지방자치단체장 자리가 성폭력으로 인해 공석이 되었다. 3명 모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는 물론 유권자들에게 백배사죄해야 마땅한데도 사건 이후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을 넘어 연일 분노가 치미는 수준이다. 절차 무시는 물론 막말과 오리발, 모르쇠 수준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난 정부의 집권여당 모습이 아른거릴 지경이다. 다음은 지난 한달간 일어난 일이다.

당헌 개정 총투표가 이 뻔뻔한 행보의 시작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당헌을 개정하겠다며 지난 10월31일 전당원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26.35%의 투표율로 전당원 투표의 유효성 충족 요건인 3분의 1을 채우지 못했다. 명백하게 결렬된 투표였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투표 참가자 중 86%가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대학의 학생회 선거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일자 말을 바꾸어 당내 여론조사였다고 변명했지만 곧이어 보궐선거 준비를 시작했다. 막말은 11월5일 국회 정책질의에서 터졌다. 보궐선거로 인한 국민세금 낭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성폭력 관련 업무의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수장인 이정옥 장관은 “이 사건을 통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에 대한 집단 학습을 할 수 있다고 역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전 부산시장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이 학습교재냐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여성단체에서는 일제히 성명서를 발표해 학습을 받아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장관이라고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기획단장인 김민석 의원은 지난 11월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성 후보 가산점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며 “성인지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더 나은 서울을 만들어가는 것은 (후보가)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인식과 행동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인식이 문제라는 김민석 의원의 주장은 원론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바로 그 원론이 이상에 맞게 작동하지 못한 결과가 이번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원인이 아니었는가? 해결 책임을 사업주나 단체장에게 최종적으로 물음으로써 책임을 다하게 만들고자 했던 직장 내 성희롱 법제도는 바로 그 최고결정권자가 가해자가 되자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 누구보다 높은 수준의 성인지감수성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도 책임자로서도 당사자로서도 실패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역시 인권, 성평등, 다양성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런데도 모두 가해자가 되지 않는 데 실패했다. 원론이 실패했다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과 대책을 재정비하고 재검토해야 했다. 하지만 사건 직후 집권여당은 조문 정치로 응답했고 음모론에 불을 지피는 지지자들의 방조행위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과 지원단체에 대한 공격에 사실상 가담했으며, 자신들 스스로 내린 결정마저 여론이라는 명목하에 손쉽게 바꾸었다. 이에 더해 집권여당 일부 의원들의 경우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성평등 관련 제도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2018년 지방선거 결과 17개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은 100%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남성 과잉대표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완벽한 독점 체제다. 지금까지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은 단 한명도 선출되지 않았다. 여성은 당내에서 후보조차 되지 못했다. 1995년부터 2018년까지 광역단체장 후보 399명 중 여성 후보는 단 4%인 16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집권 경력이 있는 당에서는 단 4명만이 후보였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절벽에 매달려 있지도 못한 꼴이다. 남자가 아닐 것. 이것이 지금 한국 정치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치러지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물론 여자라고 해서 모두 괜찮은 건 아니다. 성인지감수성은 ‘기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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