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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주식하세요? / 이길보라

등록 2020-11-25 16:01수정 2020-11-26 13:08

이길보라ㅣ영화감독·작가

“주식 하세요?” 묻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아니요, 안 하는데요, 하고 답했지만 여러 차례 질문을 받으니 이렇게 생각했다. 주식 안 하는 나, 바보인가? 나만 뒤처지고 있나?

최근 2030의 투자 열풍을 바뀐 안부 인사로 체감한다. 주위의 프리랜서, 예술가들도 ‘경제적 자유’를 외치며 자본소득에 집중한다. 이들이 주식을 하는 이유는 일을 그만두고 호화롭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자유를 위해서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대·투자 소득으로 생계비가 해결되면 일은 안 하고 싶다는 청년은 12.5%에 불과하며 투자 목표는 ‘내 집 마련’과 ‘노후자금 마련’이라고 한다.

나는 주택공사와 구청이 협력하여 만든 예술인 임대주택에 산다. 올해로 입주 5년차며 소득이 크게 늘지 않는 이상 최대 20년을 살 수 있다. 대궐같이 으리으리하진 않지만 한두 사람이 살기 적합한 곳에서 시간·경제적 여유를 갖게 되었다. 다음은 어디로 이사 가야 하나 고민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살아보니 정말 좋았다. 안정된 환경이 가져다주는 자유를 알게 되었고 부동산과 금융소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상상하니 그런 경제적 자유,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주식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친구 하나가 말했다. ㅅ기업 주식을 사는 것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는데 얼마 전 참여한 기후위기 행사에서 환경오염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하니 갑자기 주식이 생각났다고. 돈을 벌려면 투자한 기업이 확장하고 성장하여 주가가 상승하길 기대해야 하는데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성장 자체를 멈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기후위기를 염려하지만 동시에 주식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웠다고 말이다.

청년 세대가 금융 투자에 몰두하는 현 상황에 대해 질문하자 부동산 투자 할 자본이 없어 주식 하는 거라고, 이거라도 없으면 겨우 벌어 먹고사는 인생에 희망이 없다고 누군가는 말했고, 프리랜서·청년·여성·예술가가 주식 해서 더 잘 살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더 나은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잘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은 모두에게 공정하며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따르는 구조일까? <경향신문> ‘2030 자낳세 보고서’를 기획취재했던 최미랑 기자는 투자 혹은 돈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계층별로 대물림되고 있고 앞으로 자산 격차가 벌어지게 되면 청년 세대 내부에서의 불평등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심각해질 것이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각자도생이자 건강하지 않은 개인주의의 단면을 마주한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자. 장기간 혹은 평생 살 수 있는 집과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노동소득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고 노후자금을 준비할 수 있다면? 그럼 주식 하냐는 말에 나는 왜 아직 투자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불안해지는 일은, 한달치 노동소득을 한순간에 벌었다는 후기를 보며 내 노동의 가치는 왜 이렇게 작고 형편없는지 비교하고 박탈감을 느끼는 일은 줄지 않을까.

사람은 저마다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돈을 우선하는 이도 있지만 누군가는 경험, 사랑 혹은 사람을 최고 가치로 꼽는다. 가치에 우위를 매길 수 없듯 노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경험을 얻기 위해,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혹은 그냥 좋아서 일한다. 이 문제는 2030 투자 열풍을 넘어 더욱더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노동과 삶의 가치다. 불공정하게 설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란 2030이 획일화된 가치관을 요구하는 사회, 정부와 공동체에 대한 저신뢰 사회를 만나 끝나지 않는 각자도생 게임을 하고 있다. 가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서로 다른 그 가치를 지키며 상생할 수 있을까. 경쟁과 각자도생이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함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더 나은, 정확한 질문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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