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임용고시 시험을 하루 앞두고 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대형 임용고시 학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가운데 이날 오후 동작구보건소에 차려진 선별진료소에서 학원생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조문영ㅣ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직후에 중등임용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마친 수험생이 “쏟아지고” 거리두기가 “붕괴된” 상황이 보도되자, 교사 지망생이 방역수칙도 안 지킨다는 비난 댓글이 넘쳤다. 하지만 청년들이 주로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달랐다. 극한 상황에서 일 년에 한 번뿐인 시험을 쳐야 하는데 감염원 취급까지 받게 된 억울함에 십분 공감했다. “인생이 달린” 시험을 준비해온 수험생의 간절함에 감정이입하면서 공정성 논의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수능시험은 확진자에게도 응시 기회를 주는데, 똑같이 “인생 걸고” 공부한 임용시험 준비생의 기회는 왜 박탈하냐, 부모들이 집단 압력을 행사하기 힘든 취준생을 무시하는 거냐 성토가 쏟아졌다.
확진되면 자기가 죽을 수도, 전염으로 남을 죽일 수도 있는 게 바이러스다. 이런 상황에서 수험생의 권리 운운하다니 빈축을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청년은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한민국 생존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살고 있다. 언론은 “침묵의 전파자”라며 청년들의 안전 불감증을 나무라지만, 각종 자격시험은 청년들이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동아줄이다. 이들에게 안전은 단순히 죽을 위험을 피하는 게 아니라 ‘죽을힘’을 다해 성취해야 할 과업이 되었다. 젊은 층의 치사율이 낮다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새로 감염될까 걱정하는 대신, 대한민국 생존 바이러스 확진자로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이기적이나 효과적인 선택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한민국 생존 바이러스도 다른 바이러스처럼 ‘미래’라는 시간을 지워내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에 ‘경기도청년기본소득’ 수령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는 정책의 효과보다 한국 사회 청년들의 고단함에 더 신경이 쓰였다. 경기도청년기본소득은 경기도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총 4회)로 25만원을 지역화폐로 주는 제도다. 나와 공동 연구자들은 현재의 수령 경험을 통해 정기적으로 충분히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상상해보도록 유도하고, 미래의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그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었다. 하지만 학력이나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미래’는 우리가 만난 청년 대부분에게 상당히 낯선 시간이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지역화폐를 어떻게 썼는지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다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문턱에서 멈칫했다. 상상 자체를 곤혹스러워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만 상상한다”며 시간의 줄자를 잘라냈다.
기본소득 운동에 적극적인 청년들은, 기본소득을 자기 삶의 결정권을 획득할 기반으로 바라보면서 임금노동보다 자율적인 ‘활동’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일’, 특히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이 ‘일’은 자기 삶의 가치를 승인하는 절대 규범이고, 때로 노동 윤리에 대한 강박을 부추기면서 열심히 노력한 ‘나’와 그렇지 않은 남을 구분하는 잣대가 된다. 인터뷰 참여자 중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제법 많았다. 혹자는 부모님의 집요한 조련에 항복했다며, 이런저런 꿈을 키우다 나이를 먹으면서 불안이 밀려왔다며 변명하듯 답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부모 찬스”를 쓰지 않아도 되는 “공평한 기회”로 주장하는 청년도 제법 많았다. 한 참여자는 보편 기본소득의 먼 미래를 상상해보자는 우리의 바람을 통쾌하게 무너뜨렸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9급 시험을 건너뛰고 바로 7급 시험을 준비할 겁니다.”
코로나 상황이 엄중하지만 다행히 백신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데 ‘대한민국 생존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의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나를 포함해, 이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오늘도 학교와 학원에서, 공장과 회사에서 자기 안전을 확보하느라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일한다.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결정할 자유”(데이비드 그레이버)를 포기한 채, 과한 연결로 다른 바이러스의 출몰을 조장하고, 임기응변으로 피한다고 야단이고, 서로에게 책임 씌우기를 반복하며 지구의 소멸을 앞당기고 있다. 억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상처뿐인 생존 대신 만물의 숨통을 틔울 백신 개발은 결국 감염자의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