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검출되지 않으면 전염되지 않는다

등록 2020-11-26 14:58수정 2020-11-27 02:37

한채윤ㅣ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며칠 전부터 페이스북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기 시작했다. 에이즈 예방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프로필에 “U=U”란 글자를 새겨넣었다. 언뜻 보기엔 암호 같지만 쉽게 말하자면 “감염인이 건강하면 모두가 건강해진다”는 의미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 약을 6개월 이상 잘 복용하면 혈중의 바이러스 수가 검출되지 않을 정도로 적어져 전염력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오호라! 이는 드디어 강력한 에이즈 예방책을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가 감염인의 혈중 바이러스 수치를 낮춘다는 점, 수치가 낮을수록 전염력도 낮아져 성행위를 통해서도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2008년 이미 ‘스위스 연방성건강위원회’가 발표했다. 처음엔 모두 믿기 어려워했다. 전세계 연구자들이 신중하게 여러 번의 대규모 임상시험과 검토를 거듭했고 마침내 2016년, 국제 에이즈 콘퍼런스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이며, 효과적인 에이즈 예방 정책임을 천명하는 공식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를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검출되지 않음=전염되지 않음”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도 “U=U” 메시지 사용을 2019년 7월에 공식 허가했다. 이 메시지는 감염인을 주체로 존중하는 예방 패러다임의 변화, 감염인이 자신의 삶과 건강을 스스로 돌보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게 하는 동기부여, 에이즈에 대한 강한 편견, 비하, 오명, 낙인 등을 줄이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새롭고, 강력하며, 희망적이다. 한국은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의 수가 세계적으로 적은 나라에 속한다. 에이즈 유병률이 0.04%밖에 되지 않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유병률이 두 번째로 낮다. 1985년 이후 사망자와 생존자를 모두 포함해 누적된 감염인 수가 총 2만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이야말로 “U=U” 캠페인이 빠르게 정착될수록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절실하게 “U=U”를 외쳐야 할 판에 엉뚱하게 “동성애=에이즈”가 더 크게 들린다. 편견이 강화되면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모두 에이즈 검사나 약 복용이 힘들어진다. 동성애자로 오해받을까 봐 걱정되고,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세 번에 걸쳐 ‘HIV 감염인의 인식 조사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2020년도 조사에서 감염인의 76.2%가 병원을 가기 어려워하는 이유로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라고 답했다. 놀라운 결과다. 과연 다른 질병이라면 이런 대답이 나올까? 아픈데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병원을 못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바빠서,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혹은 병원에 안 가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미루는 경우는 있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옆 사람이 조금 아프다고만 해도 괜찮냐고 걱정하고, 약을 먹도록 물을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돌봄이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에겐 일상이 될 수 없을까.

에이즈는 코로나19와 달리 일상생활로 감염되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거나 수건 등 물품을 같이 쓴다고 해서 전염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성애를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난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19가 확산되었을 때 감염 원인을 기독교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헛소리다. 설사 교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도 신앙 때문에 바이러스가 확산된다고 할 수 없고, 학교에서 감염되었다고 해 공부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어디서 무얼 하든 정확한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가 필요할 뿐이다. 우리가 올 한 해 처절하게 배운 것은 이것이 아닌가.

비록,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력 안에 있지만 에이즈 예방법만큼은 확실히 찾았다. 다가올 12월1일은 세계보건기구가 에이즈 예방과 편견 해소를 위해 제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감염인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다. 그러니, 이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지긋지긋한’ 에이즈 혐오를 걷어내자. 제발 부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1.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2.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3.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사설] 인적 쇄신 한다며 불통·비선 논란만 자초한 윤 대통령 4.

[사설] 인적 쇄신 한다며 불통·비선 논란만 자초한 윤 대통령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5.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