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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시골에 살아서 가능한 일 / 명인

등록 2020-11-29 13:17수정 2020-11-30 02:38

명인(命人) ㅣ <회사를 해고하다> 저자

오래전부터 꿈꾸어왔던 게 있다. 만 쉰살이 되면, 구약성서의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희년을 선포했던 것처럼 나도 나에게 안식년을 선포하리라. 올해가 바로 그해였다.

꿈은 원대했지만, 우리 사회에 안식년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을 리 없으니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 수입원이던 비정규 강의도 ‘코로나19’로 거의 없었다. 어차피 약간의 실업급여로 한 해를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꿈꾸었던 것과 달리 초조해졌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40년 동안 살던 서울을 떠나 고흥으로 살러 왔던 첫해를 떠올려보니 못 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놀랍게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첫째, 엄청 잘 먹고 산다. 나가 먹고 시켜 먹던 삼겹살과 치킨 등이 식단에서 사라졌고, 한 끼를 ‘때우는 데’ 유용하던 가공식품이 찬장에서 사라졌다. 대신에 철을 따라 산과 들로 나물과 푸성귀를, 물때를 가늠해가며 갯벌 채취를 하러 다녔다. 때마다 싱싱한 식재료가 넘쳤고, 철마다 조금 바지런을 떨었더니 냉동고만 파먹고도 살 수 있었다. 게다가 오다가다 이웃을 만나면, 두 손이 모자라게 얻어오는 게 생겼다. 시골에선 식재료가 한번 생기면 그 양이 엄청나니, 어쩔 수 없이 부지런히 조리법을 달리하여 다채로운 요리를 하게 되었다. 콩이 많이 생기면 바닷물을 떠다가 두부를 만들어 먹고, 여름내 콩을 갈아 콩국수를 해 먹는 식이었다. 옆지기가 3년째 집을 짓느라 벼농사 외엔 농사를 작파한 상태인데도 장에 갈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고, 나는 매 끼니를 정성스레 짓고 차릴 수 있었다.

두번째 변화는, 어느 날 문득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운 게 한달 전인데, 아직도 기름이 남았더라니. 지난 6년 동안, 1년 평균 주행거리 3만㎞였던 차다. 올해 내가 이 정도로 기름값을 적게 쓰고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그보다 더 기가 막혔던 건 오히려 내가 작년까지 대체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건가 싶어서였다.

시간이 많아지니 에어컨 없는 집에서 여름을 나는 것도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저 볕이 드는 곳을 좀 피해 다니고, 최대한 바람을 맞아들이며 지냈다. 한낮에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조차 뜨겁던 한여름에는 마스크를 쓰고 공공도서관에 가서 피서하며 책을 읽었다. 코로나19로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았을 때는 철마다 담가둔 효소를 물에 타서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며 집에서 지내거나, 차를 타고 어느 방향으로든 10분만 움직이면 나오는 숲 그늘을 찾아가 산책하며 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들은 일부러 돈을 들여가며 먼 거리를 이동해서 여행을 오는 곳, 창밖으로 고개만 돌려도 산이며 들이 펼쳐진 곳, 조금만 움직여도 바다에 닿는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난 몇년 동안 도시에 살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일이 줄어 실업자에 가까운 처지가 된 덕분에(?) 나는 다시, 과로와 스트레스를 소비로 보상하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소득’을 잃은 대신 ‘시간’을 얻었고, ‘임금노동’을 덜 하는 대신 ‘살림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중독, 소비중독으로 무너진 내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100세 시대라는데 변변한 보험조차 들어놓지 않은 처지에 이런저런 불안이 없진 않다. 그러나 나는 올해를 기회로 삼아 다시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대체 뭣이 중헌디, 말이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주거 비용이며 살림 비용이며 그 모든 것이, 대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시골에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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