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ㅣ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구글이 지금까지 실패한 사업과 서비스가 220개 정도 된다고 한다.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그들이 돈이 부족한 것도, 인재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그 많은 실패를 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을 했기 때문이다. 말뿐인 구호가 아니라 실행을 하고, 가능성이 작더라도 과감히 도전을 했기에 지금의 구글이 존재한 것이다. 지금 시대의 산업 주도권은 이런 기업들이 갖고 있다. 더 이상 벤치마킹만 잘해서 남 따라가는 것만 잘하는 기업이 설 자리는 없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기업이 살아남기란 어려운 게 바로 뉴노멀 시대다.
최근에 정부가 얘기한 인공지능(AI) 인력 10만 양성을 비롯해, 지난 수십년간 각 정부에서 무슨 미래 계획을 세울 때마다 어김없이 ‘10만 양병’이라는 단위가 클리셰처럼 쓰인다. 지난 정부에선 여성 인재 10만 양성, 앱 개발자 10만 양병설을, 그 이전 정부에선 그린에너지 인재 10만 양성을 얘기한 바 있고, 소프트웨어 인력 10만(이건 10만을 넘어 20만 단위까지의 양병설이 나오기도 했다), 10만 벤처 양병설, 10만 수출 중소기업 양병설, 10만 해커 양병설 등 숱하게 많다. 인재는 구호처럼 “10만”을 외친다고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주로 10만 단위에 수십년째 꽂혀 있는 듯한데, 그렇게 외쳐온 10만명들은 도대체 다 어디에 가 있는 걸까?
‘10만 양병’만큼이나 ‘한국형(혹은 한국판)’이란 말도 정치권에선 좋아한다. 한국형 넷플릭스, 한국형 유튜브를 만들겠다는 정부부터, 지난 정부에선 한국형 알파고,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그 이전 정부에선 한국판 카길(세계 4대 곡물유통기업 중 하나), 한국판 닌텐도, 한국판 안드로이드를 만든다며 투자했다.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성공한 해외 사례에다가 한국판, 한국형이란 말만 갖다붙이면 성공이 재현될 줄 아는 건 참 나이브한 발상이다. 그만큼 비즈니스에 대한 감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 ‘나이브(naive)하다’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외래어다. ‘순진하다, 천진하다’ 정도의 의미로 쓰는 사람들이 있던데,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순진하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특히 어른들에게, 그것도 비즈니스하는 상대에게 쓰는 건 아주 못마땅하다는 뉘앙스다. 그렇다. 순진한 건 무능한 거다.
10만 양병설과 한국형(한국판)이 구호처럼 수십년째 정치권에서 계속 쓰이는 건 그만큼 세상 변화에 둔감하게 일하고 있단 방증이다. 입으론 미래를 얘기하고, 첨단 기술을 얘기하지만, 행동과 태도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을 우린 자주 본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뉴노멀은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낯설었던 새로운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을 말한다. 급변하는 트렌드에 촉각을 세우고,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구호만 외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점점 정보기술(IT)이 산업과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첨단 기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건 진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비전문가가 얄팍한 지식으로 산업과 미래에 대한 방향과 실행 계획을 잡는 건 사상누각이기도 쉽고, 용두사미도 된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나왔던 산업과 미래 관련 정책 중 실효를 거둔 걸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세상에 좋은 것치고 쉬운 건 없다. 구호만 외쳐서 성장하고 미래가 밝아질 것 같으면 누군들 못 하겠는가? 25년 전 “기업은 이류, 관료조직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일갈했던 그가 떠오른다. 그의 기업은 기술로 세계 일류가 되었지만, 여전히 관료조직과 정치는 25년 전에 머문 듯하다. 위기의 시대, 진짜 실력은 더 드러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