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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한-중 합작 ‘김치 대소동’ / 김은형

등록 2020-12-01 15:38수정 2020-12-02 09:22

한국인들에게는 낯설었던 중국 전통음식 ‘파오차이’가 하루 만에 ‘김치’처럼 친숙해졌다. 한자로 포채(泡菜)라고 쓰는 파오차이는 중국식 야채절임으로 서양의 피클이나 한국의 장아찌, 일본의 쓰케모노 같은 음식이다. 생강, 마늘 같은 향신료와 소금을 끓인 물에 다양한 야채를 넣어서 발효시킨 것으로 오래전부터 쓰촨지방에서 발달해 쓰촨파오차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중국음식점에서 흔히 먹는 자차이(짜사이)도 파오차이의 한 종류다.

지난 29일 파오차이가 김치의 국제표준이 됐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국내 여론이 들썩였다. 중국 <환구시보>가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인증을 받았다는 <중국시장감관보>를 인용하면서 난데없이 ‘김치(파오차이) 종주국 한국의 치욕’이라고 제목을 달았기 때문이다. 기사를 보면 표준화는 파오차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단지 중국인들이 김치를 흔히 ‘한국 파오차이’라고 부른다는 이유로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이 김치의 국제표준으로 둔갑하는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 언론들이 다시 환구시보를 인용해 ‘김치공정’, ‘김치굴기’ 등 조어까지 해가며 ‘중국 김치가 국제표준이 됐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이 문제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한국 외교의 무능”까지 거론했다. 환구시보가 울고 갈 ‘아무말 대잔치’의 끝판이다. 환구시보는 2017년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는 막말을 논평으로 냈고, 지난 6월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해 비티에스(BTS)가 “(한·미) 양국 고난의 역사”라고 표현한 것을 트집 잡아 중국 여론을 자극하는 등 극단적 애국주의로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를 여러차례 써왔다. 하지만 이번 김치 국제표준 소동은 환구시보의 일방적 공격이라기보다는 중국 언론과 한국 언론 모두 취재보다는 ‘받아쓰기’ 경쟁을 벌이며 ‘낚시질’에만 골몰하다 벌어진 해프닝에 가깝다. 알고 베꼈든 모르고 베꼈든 결과적으로 양국 언론은 ‘환상의 복식조’ 팀워크를 발휘했고 각각 혐한과 혐중 여론을 자극해 조회수를 올린다는 목표는 달성한 듯하다. 이번에도 부끄러움은 읽는 이의 몫으로 남았다.

김은형 논설위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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