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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는 마음가짐 / 이원재

등록 2020-12-01 17:15수정 2020-12-02 12:11

이원재 ㅣ LAB2050 대표

도대체 어떤 해를 살아내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길이 막막한 채 연말을 맞고 있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는 일들이 이어지며 정신없던 한 해도 마무리는 해야 할 터다. 잠깐 멈추고 되돌아본다. 올해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되새길 것인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게 된 코로나19로부터 읽어야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

지난 1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되새겨보던 중, 두 가지 마음을 길어냈다.

첫 번째 마음은 ‘조금 천천히 가자'는 것이다. 인류는 19세기 이후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세계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지면, 기원 1년 이후 1800년대까지 겨우 다섯 배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200여년 동안 100배나 성장했다.

기술혁신이 이뤄낸 속도의 혁명이 가파른 성장의 동력이었다. 공장은 쉼 없이 점점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교통수단의 비약적 발전으로 재료가 가공되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단축됐다. 인터넷은 지식정보 확산 속도를 무한대로 높였다.

천천히 가라는 바이러스의 명령은 이런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성장세가 가파를수록 바이러스 확산세도 가파르다. 잠시 멈추면 확산도 멈춘다.

두 번째 마음은 ‘흩어지자'는 것이다. 대감염의 메시지는 ‘비접촉’이다. 사람이 바이러스의 숙주다. 접촉하면 퍼진다. 목숨을 지키려면 비접촉 원칙을 지키라는 명확한 메시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서로 간의 접촉면을 점점 더 넓히는 방법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9세기 이후 인류의 발전 방향이 그랬다. 마을은 넓어져 도시가 됐다. 마을과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국가 전체를 돌아다니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세계화 바람은 그런 이동이 전세계로 넓어지게 만들었다. 도시 간 무역은 국가 간 무역으로, 다자무역질서로 넓어졌다. 전세계 누구나 만나고 대화하고 어울릴 수 있다는 특징이, 현대 문명의 아름다움으로 여겨지는 데까지 왔다.

‘접촉하지 말라’는 코로나의 주문은 이런 문명의 발전 방향을 단번에 뒤엎는다.

두 가지 마음을 요약하자면, 조금 내려놓으라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바이러스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을 모두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영원히 확장할 수도 없고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잠시 맡겨진 것일 뿐이다. 그러니 끊임없는 확장에 집착할 일도 소유에 집착할 일도 아니다.

조금 내려놓자는 이야기는 결코 삶을 멈추고 제자리에 머무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좀 더 과감하게 발을 내딛자는 이야기에 가깝다. 경제성장률을 높이자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모두가 달려가던 개발도상국의 삶에서 벗어나, 환경이나 사회적 신뢰처럼 다양한 가치를 향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선진국의 삶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다. 더 중요한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를 각자 구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정부가 했던 탄소중립 선언은 의미가 깊다.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자는 방향 전환이다. 상반기 지급됐던 보편적 긴급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제 논의도 반가웠다. 모두에게 잠시라도 쉴 여유를 주려는 움직임이다. 공공주택 정책 대상을 중산층으로까지 넓히겠다는 발표도 맥을 잘 짚었다. 집을 소유하려 너무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이런 기조가 사회 패러다임 전반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경제의 최고 지표는 물질적 생산 위주로 측정하는 국내총생산이다. 인간적 가치를 담은 국가 지표를 만들고 여기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전히 사회보장제도는 기업에 고용된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조직에 속하지 않고 흩어져 있는 개인들이 스스로 서서 연결하며 투자하고 사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여전히 기업은 당장의 재무적 가치만을 극대화하는 데 급급하다. 장기적인 가치,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기업 경영 방식이 더 도입되고 정착되어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번 회복은 다시 돌아가는 회복이어서는 곤란하다.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초회복이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변화는 늘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쉬운 길만 가면서 더 나은 삶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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