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성ㅣ변호사·사회학자
비극이다. 학살 책임자가 여전히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전두환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을 향한 헬리콥터 사격은 없었다며,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광주지방법원은 지난달 30일, 전두환에게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치지 않고 전두환을 욕하고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구조를 살펴보자. 40년 전 사건에 대해, 왜 아직도 뻔뻔한 거짓말이 존재하는가.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80년 광주학살 청산 과정의 ‘결함’이 하나의 이유이다. 국가범죄에 대한 청산은 진실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 과거사 청산 중 두 측면이 균형 있게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5·18의 경우 진실규명 없이 피해자에 대한 조처가 먼저 이루어졌다. 그 과정은 굴욕적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1990년 8월 ‘5공과의 단절’ 정책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일방적으로 제정한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진상규명을 외면한 채 돈으로 입막음”하는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위 법률에서 규정한 금전 지급 대상의 명칭에는 불균형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건에 대한 어떠한 진상규명도 없었기에 보상금을 받는 주체는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닌 ‘관련자’로 규정되었다. 비록 위 법률로 일정한 보상은 이루어졌지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청산하는 절차였다.
5·18 진실규명은 ‘관련자’가 ‘희생자’로 호명되어가는 과정이었다. 2002년이 되어서야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희생자’라는 주체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2018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비로소 법률에 근거하여 조사 권한을 부여받은 위원회 구성이 가능해졌다. 수십년 동안 제대로 된 진실규명이 지체되는 불균형 속에서 거짓말은 끈질기게 번져나갈 수 있었다.
5·18과 정반대 순서로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제주 4·3사건이다. 민주화 이후 치열한 투쟁 속에서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이 입법될 수 있었다. 법률에 근거를 둔 조사기구로써 청산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학살이 벌어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루어진 공식 조사였지만, ‘관련자’라는 치욕스러운 호칭은 없었다.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고, 이 보고서에 근거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추념식에 참석해 사과했다.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 등 추가로 밝혀야 할 영역은 존재하지만, 여러 과거사 사건 중 진실규명에 있어서 단연 의미 있는 성취를 가진 것이 4·3이다. 그러나 진실규명 이후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비나 소액 생활지원비를 제외한) 국가의 배상·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재심 사건을 제외하고는 국가배상소송 형태의 개별적인 피해 회복도 없었다. 여러 국가범죄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4·3이 가진 불균형이다. 5·18의 불균형이 거짓말을 번지게 했다면 4·3의 불균형은 제대로 된 피해 회복 없이 희생자들을 돌아가시게 했다. 역시 비극이다. 고문당하고, 가족이 죽임당하고, 빨갱이로 손가락질당했던 고통에 국가는 말로만 사과했을 뿐이다.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주어야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2003년 사과 발언이다. 이를 위한 조처, 즉 4·3 희생자들에 대한 배보상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최근에야 4·3특별법 전부개정안 형태로 제출되었다.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 다시 발의되었으나 예산 부담을 이유로 아직 큰 진전이 없다. 4·3단체들은 연내 입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국회 문턱은 높다.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이 야속할 만큼 없다.
전두환은 감옥으로!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구호이다. 왜 집행유예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부디 같은 분노와 관심을 4·3특별법에도 가져주시길 바란다. 둘은 다르지 않다.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제대로 배상하지 않는 것도 중대한 문제이다. 국가범죄에 대해 예산을 이유로 배상하지 않는 것은, 감옥이 부족하다며 학살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합의가 있다면 감옥도 만들고 예산도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