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경ㅣ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11월 말 데이터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과 경영자에 대해 처벌수위 높이는 것’에 대해 응답자 64%가 찬성하고 그중 40%는 ‘적극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저 막연한 찬성이 아니라 쟁점을 분명히 인지한 의견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원내 두 거대 정당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 차일피일 뭉그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집권당과 제1야당이 국민들보다 더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이 누구일까?
지난 10월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앞서 6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경영계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11월17일에는 ‘10대 경제·노동법안에 대한 경영계 의견서’를 전달하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그중 하나로 포함했고, 19일에는 ‘경총 등 30개 경제단체 및 업종별 협회’ 명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 대한 경영계 의견’을 또다시 국회에 ‘건의’했다. 그런데 그 ‘경영계 의견’의 내용이 심히 유감스럽다.
‘의견’은 ‘우리나라 사고사망 만인율이 영국, 독일, 일본 등에 비추어 2~3배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올해 1월부터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 및 원청의 처벌을 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전반기 사고 사망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5명 늘었고, 사고 재해자 수도 3.5%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김용균법’만으로는 지금도 계속 사업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피해자들을 막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사업주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다른 대책이 없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 ‘의견’은 ‘사망사고 시 처벌받는 사업주의 안전·보건 준수사항만 세부항목별로는 수천 개에 달하고 있음에도, 안전관리 수준이 높은 대기업에서조차 수백~수천 건의 법 위반사항이 적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힌다. ‘2017년 ○○중공업 866건, 2018년 ○○전자 1689건, 2019년 ○○제철 2401건, 2020년 ○○중공업 521건’이라고 법 위반 적발 건수 사례까지 친절하게 예시해 놓았다. 기존 제도는 대기업들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구속력밖에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현행 제도로는 도저히 방도가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명백한 사실을 스스로 적시해놓고도 ‘의견’은 이렇게 주장한다. ‘사고는 기업의 안전규정 미준수 외에도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안전문화 수준, 산업발전 정도와 안전기술 대응 수준, 국가 전반의 안전시스템 저변의 한계, 건설 분야의 공시 기간과 비용에 대한 계약구조와 압박, 근로자 개인별 부주의, 산재예방 행정 조직의 전문성 부족, 민간의 안전서비스 지원 인프라 취약 등 매우 복잡·다양한 원인’이 있음에도 ‘모든 책임을 사업주와 원청에 일방적으로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답답하다. ‘산업현장의 안전문화’는 누가 만들고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건설 분야의 공시 기간과 비용에 대한 계약구조와 압박’은 대체 누가 하는 것인가? 경제 규모 세계 11~12위인 대한민국의 ‘산업발전 정도와 안전기술 대응 수준’이, 이 끔찍한 작업장 환경을 개선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가? ‘의견’이 적시한 대로 ‘2019년도 전체 사고사망자의 94.4%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 이 중 77.2%가 50인 미만 소기업에서 발생’했다. 이 기업들은 원청인 대기업의 하청이거나 하청의 하청 일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총은 국회 문턱이 닳도록 입법 훼방을 놓으러 다닐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원청들을 모아 그 뛰어난 기술과 넘쳐나는 자본으로 이 끔찍한 현실을 개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