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을 개혁하지 않은 채 만약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검찰이 전반기에는 문재인 정부 비리를 집중 수사할 것이다. 후반기에는 집권 세력에 칼을 들이댈 것이다.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검찰이 영원한 승자가 되는 ‘네버 엔딩 스토리’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독특한 성격에 주목하면 이번 사안의 본질을 놓칠 위험이 있다. 본질은 검찰에 대한 통제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치권력과 직접 수사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검찰권력의 충돌이다.
법무부 장관은 국무위원이다.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 검찰, 행형, 인권 옹호, 출입국 관리 그 밖에 법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검찰총장은 특정직 공무원인 검사들의 수장이다.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 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
검찰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이다. 법무부 장관이 검사들을 통제하는 수단은 세 가지다.
첫째, 지휘·감독권이다.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
둘째, 인사권이다.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셋째, 징계권이다.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에 두는 검사 징계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겉으로 보면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보다 훨씬 더 막강한 것 같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추미애 장관은 세 가지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윤석열 총장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왜 그럴까? 두 가지다. 첫째, 무리해서 그렇다. 너무 거칠게 몰아붙이다가 명분을 놓쳤다. ‘법대로’에도 절차적 정당성과 민심의 지지가 필요하다. 둘째, 상대를 너무 만만한 게 본 것 같다. 두 번째 잘못이 더 크다.
윤석열 총장은 조직인이다. 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검사는 조직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총장은 검찰주의자다. 그의 이데올로기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검찰이다. 극우나 극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윤석열 총장은 유별난 검사가 아니다. 검찰에는 윤석열 총장 같은 검사가 수십명, 수백명은 더 있다. 추미애 장관은 그 부분을 놓친 것 같다.
대부분의 검사는 추미애 장관의 조처가 위법·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다. “검찰 개혁의 목표가 왜곡되거나 그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냉철하게 재고해 바로잡아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라는 정중한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출범시켜 검찰을 견제하고,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축소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방안에 얼마나 많은 검사가 찬성하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일 오후 법원의 직무집행정지 명령 효력 임시중단 결정이 나오자마자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사들이 사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의감과 책임감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 오히려 문제일 수 있다. 권한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은 엘리트 조직의 집단적 본능이다.
세간의 관심은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싸움이 누구의 승리로 결판이 날지에 쏠린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국가적 의제를 잊어선 안 된다. 검찰 개혁이다.
이번 사태를 겪고도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의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마저 실패하면 검찰 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우리가 정치적 중립성, 이 부분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정치적 중립성만 해결되면 그 틀 속에서, 말하자면 검찰의 민주화까지 따라 온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을 신뢰한 데 대한 후회였다.
그런데도 정작 대통령이 돼서는 검찰에 적폐청산을 맡기고 검찰주의자를 총장에 임명했다.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 늦지 않았다. 사람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제도를 고쳐야 개혁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공수처를 출범시켜야 한다. 공수처 출범은 검찰 개혁의 시작이다. 궁극적으로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넘겨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검찰은 절대로 개혁되지 않는다.
야당도 정신 차려야 한다. 검찰을 개혁하지 않은 채 만약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검찰이 전반기에는 문재인 정부 비리를 집중 수사할 것이다. 후반기에는 집권 세력에 칼을 들이댈 것이다.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검찰이 영원한 승자가 되는 ‘네버 엔딩 스토리’다. 야당이 두려워해야 할 상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검찰이다.
성한용ㅣ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