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최근 문재인 정부가 몇몇 국정 현안에 대처하는 양상을 살펴보면 아주 유사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대통령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로 인해 국정 조정능력에서 공백이 초래되고 정부 기능 내에서의 협력이 실종된다. 공무원들끼리 손발이 맞지 않고 부처의 일 처리에서 실수와 결함이 드러난다. 이를 기회로 야당의 정치공세가 강화되고 담당 부처의 장관이 몽땅 그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한참 일이 악화된 다음에서야 청와대가 수습에 나선다. 몇몇 사례를 보자.
지난 9월22일 오후 4시30분. 연평도 동북 해상에서 사라진 우리 공무원이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그날 밤 9시가 넘어 북한은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것처럼 보였다. 23일 오전 1시부터 청와대에서는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고 오전 8시 반에 장관회의 논의 결과를 보고받은 문 대통령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잦은 경계 실패로 군이 질타받던 터에 대통령의 지시는 노기가 서린 질책에 가까웠다. 이 지시에 압도된 청와대 안보실은 정확한 정보관리와 세심한 위기관리를 진행하지 않고 국방부에 일 처리를 위임했다. 이날 서욱 국방장관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극소수 참모를 장관실로 불러들였는데 정책실장은 공석이었고, 북한 문제에 대한 정무적 조언을 해야 할 대북정책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서욱 장관과 동일한 보병작전 출신의 합참의장, 작전본부장 등 참석자 전원이 같은 사고와 경험을 공유하는 육군이었다. 그 결과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대안 검토 대신 북한과의 대결을 불사하는 단일한 집단사고(Group Thinking)로 기울어 24일의 강도 높은 대북 규탄성명으로 이어졌다. 25일 북한의 사과통지문이 도착하자 전날의 대북 규탄성명에서 상당 부분 정황을 사실로 단정한 오류가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안보실은 아무런 역할이 없었다. 이후에는 국방부가 이전에 뱉은 이야기를 주워담느라 쩔쩔매고 뒤늦게 청와대가 나서 사태를 수습한다.
최근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파동은 석 달 전 국방부와 쏙 빼닮은 꼴이다. 윤 총장의 임기 유지에 대한 문 대통령의 판단이 무엇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검찰총장이 국정의 큰 부담이 되는 동안 국무총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정 역할은 보이지 않고 법무부에만 사태 해결이 위임되었다. 여당은 적극적인 관여를 하지 못하고 뒤만 쫓아가는 거수기였다. 추미애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법무차관, 감찰관, 감찰위원회 등 관련 기능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생각이 같은 극소수 참모들과 비밀리에 윤 총장에 대한 감찰과 징계를 진행하였다. 비록 추 장관의 검찰개혁에 대한 방향은 옳다고 할지라도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사고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부정확한 정보관리와 절차적 결함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법원이 윤 총장의 직무배제 일시중지 요청을 받아들이고 차관이 사의를 표명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법무부가 더 이상 사태를 수습할 방법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늦게나마 청와대가 나서지 않으면 출구는 없다.
비슷한 현상은 방역 전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방역은 국가의 모든 가용한 자원을 동원하는 총력전과 같아서 그 책임 단위는 누가 뭐래도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빠지고 질병관리청을 주축으로 한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모든 것을 위임하는 지금의 방식은 바이러스가 더 확산될 경우 취약함을 드러낼 것이다. 확진자 숫자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조정하는 소극적 정책만으로는 이 재난을 이길 수 없기에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의 차원에서 국가의 가용자원을 집중하는 더 높은 수준의 방역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에서도 합리적 중도층까지 개혁의 전선에 동원해낼 수 있는 참으로 운이 좋은 정부다. 이 정부가 후반기에도 그 운이 통하려면 기계적으로 부처에 중요 사안을 위임하는 행태를 근절하고 국정 운영의 전반에서 집단지성을 복원해야 한다. 청와대로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는 거대한 신경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생물체로서 뛰어난 지성을 제공하는 유기체다. 그 중추에 뇌의 역할을 하는 청와대의 기능 마비를 치유하지 않으면 국정 난맥은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