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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딥 스테이트’, ‘블로브’, 그리고 한국 검찰은 무엇인가?

등록 2020-12-04 19:35수정 2020-12-05 14:18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중앙지검은 김욱준 1차장 검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사태' 이후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사진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연합뉴스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중앙지검은 김욱준 1차장 검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사태' 이후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사진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며 패배를 거부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이다. 그는 취임한 이후 평소 미국 정부 내에서 선출된 권력을 무력화하고 실제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딥 스테이트’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라의 심부’ 또는 ‘나라 안의 나라’라는 뜻의 딥 스테이트는 정부 안에 깊숙이 뿌리박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세력을 가정한 표현이다. 유대인 집단이 세계 지배 음모를 획책한다는 ‘시온 장로 의정서’라는, 대표적인 음모론의 연장선에 있다. 딥 스테이트라는 말은 1990년대 마약단 등과 결탁해 반정부 세력을 소탕하던 터키 군부 등 공안기구 세력에서 유래됐다고 본다. 터키어인 ‘데린 데블레트’를 그대로 영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몬머스대학의 2018년 3월 여론조사를 보면, ‘국가 정책을 은밀히 혹은 직접적으로 조종하는 선출되지 않은 정부와 군의 관료 집단’이 미국 연방정부에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27%, ‘그런 집단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47%였다. 미국인의 74%가 딥 스테이트 담론에 공감하는 것이다.

자기 이해에 따라 스스로 진화해 패거리가 된 집단은 국가 안에 존재한다. 문제는 그들이 통제되지 않고, 주권자나 선출된 권력을 농락하느냐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워싱턴의 외교안보 세력이 딥 스테이트가 됐다는 질타도 거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안보보좌관이었던 벤 로즈는 워싱턴 주류의 외교안보 인사들을 ‘블로브’(Blob)라고 질타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블로브란 ‘덩어리’란 뜻으로, ‘떼거리’나 ‘적폐’ 정도의 의미이다.

2016년 5월 <뉴욕 타임스 매거진> 기사에서 로즈는 “블로브에는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의 안보질서가 붕괴됐다고 끊임없이 칭얼거리는 힐러리 클린턴, 로버트 게이츠 및 민주·공화 양당의 이라크전 지지자들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로즈에 따르면, “당파를 뛰어넘는 대외정책 엘리트”로 포장된 블로브는 상투적인 추정과 원칙을 들이대면서, 미국의 힘을 남용해 미국을 너무 많은 난장판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워싱턴 블로브들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무력으로라도 전파해야만 한다는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일 뿐이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견지되는 세계관이라는 비판이다. 트럼프도 이들에 대해 “완전한 이력서를 가졌으나 실패한 정책과 계속되는 전쟁 패배의 긴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제외하고는 자랑할 것이 없는 이들”이라며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정당화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대외정책팀들이 동맹과 세계를 불편하게 했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교정할 경험 많은 외교안보 인사라는 평도 있지만, ‘블로브들의 귀환’으로도 우려된다고 <뉴욕 타임스>는 평가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범죄가 나면 만만한 용의자를 일단 제일 먼저 잡아들이는 것처럼 “‘유주얼 서스펙트’들만 데리고 온다”고 비판했다. 한국으로서는 이들의 등장이 다시 한반도 문제를 무한한 교착·대치 상태로 되돌리지 않을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한국 내에서는 ‘딥 스테이트화된 블로브’ 문제는 없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검찰개혁 행보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나, 국가형벌권을 한손에 쥔 집단의 패거리화를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냐는 심각한 사태에 봉착했다. 국가 권력에서 형벌권은 핵심이다. 형벌권은 수사권과 기소권인데, 이 두가지를 그동안 검찰이 한손에 움켜쥐고는 자의적인 행사를 해온 행태를 교정하려는 것이 검찰개혁이다.

딥 스테이트의 어원이 1970년대 미국에서 논란을 크게 일으킨 포르노 영화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 딥 스로트)라는 얘기도 있다. 영화는 성감대가 목구멍 깊숙이 있는 주인공을 둘러싼 전형적인 난장판 포르노이다. 포로노가 여성의 성 착취를 전제로 한다는 문화적 각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논란 때문인지, ‘딥 스로트’는 엉뚱하고 은밀한 데 있는 핵심 실체를 일컫는 상징어로 쓰였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사임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은밀한 제보자가 딥 스로트로 지칭되기도 했다. 딥 스테이트는 딥 스로트에서 나온 경멸적인 풍자어라 할 수 있다.

검찰이 자기 이익에 기초한 패거리가 되어서 국가형벌권을 좌지우지한다면, 국가권력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딥 스테이트’, ‘딥 스로트화된 블로브’가 아닌가?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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