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1월24일 화요일 델라웨어 윌밍턴에 있는 퀸 극장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의 연설을 듣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혜영 |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선거는 끝났다. 조 바이든 당선자는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외교와 경제를 책임질 주요 내각 인사 발표를 마무리했다. 가장 먼저 지명한 자리는 국무장관이었다. 전세계에 내보이는 미국의 얼굴이자 미국의 외교 정책을 책임지는 국무장관 임명은 신임 대통령의 인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사다. 특히 추락한 미국의 위신을 되살리고, 국제 사회의 협력에서도 미국이 원래대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하려는 바이든 당선자라서, 그 임무를 직접 담당할 국무장관이 누가 될지는 큰 관심사였다.
오랫동안 바이든의 곁에서 함께 외교 정책을 만들고 보좌해온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은 차기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을 비롯해 다른 주요 외교안보 라인도 구성을 마쳤다. 한국으로서는 이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예상하는 데 필요한 중요 데이터를 얻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블링컨 차기 장관과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예상되는 대북 정책을 상수로 정해놓고 대응 전략을 준비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흔히들 외교 정책은 국내 정책과 달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외교 정책의 기조도 곧바로 정해진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그런 건 아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외교 정책은 국내 정책 결정 과정과 큰 차이가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미국이 국제 사회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차츰 바뀌었다. 특히 1922년부터 17년간 대법관을 지낸 조지 서덜랜드는 외교 정책이 국내 정치와 다르다는 ‘외교정책 예외주의’의 원칙을 일련의 판결로 확립했고, 2차대전과 냉전은 이에 대한 확신을 더 강화했다. 다시 정상화의 길을 걸은 건 냉전 이후다. 국내 정책과 마찬가지로 의회와 사법부도 외교 정책 결정에 적극 관여하고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민자 그룹, 외국 기업 등 미국 안팎의 이익집단도 로비를 통해서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경쟁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정책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것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뉴욕 타임스>는 워싱턴D.C.에 있는 세계 각국 대사관과 미국 주요 기업들이 앞다투어 바이든 당선자와 소위 ‘끈’이 있는 로비 회사를 찾아 계약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린폴리시>는 바이든 선거캠프에 외교 정책 자문단으로 이름을 올린 전문가만 2천명이 넘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즉, 새 정부 안에서도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수많은 외교 정책 전문가들이 경쟁하고 있으며, 다양한 이익집단의 압력이 반영돼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한정된 바이든 행정부에 우리에게 중요한 이슈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바이든 외교 라인의 관심을 끌어오는지가 외교의 성패를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다.
한국으로선 조급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은 우리가 원하는 대북 이슈를 미국이 우선순위로 꼽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공통의 관심사를 적극 부각하면서 접촉면을 넓히고 신뢰를 쌓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반드시 그 이슈에만 파묻혀 있을 필요도 없다. 바이든은 후보 때 <연합뉴스> 기고문에서 한-미 동맹 강화 의지를 밝히며, 세가지 이슈를 언급했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들이 자동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드는 일, 교육과 이민 비자 확대 문제, 마지막으로 북한에 가족이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이산가족 상봉 문제다. 모두 북핵 문제와 직접 연관된 사안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함께 일하며 신뢰를 쌓기에 꼭 알맞은 사안이다.
지금은 새 정부의 외교 정책이 모습을 갖춰가는 시간이다. 미국 정부의 관심을 끌어내고 협력에 필요한 기초를 다져 미국 외교 정책을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짤 수 있는, 흔치 않은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