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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혁신에 약한 나라 / 김우재

등록 2020-12-07 14:04수정 2020-12-08 13:50

김우재 ㅣ 낯선 과학자

구글이 또 사고를 쳤다. 새로운 인공지능 ‘알파폴드’ 때문에 생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됐다. 이번 성과에 비하면,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새 발의 피다.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만으로 대부분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분자생물학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이런 프로그램의 등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생명의 설계도인 디엔에이(DNA) 이중나선 속엔 우리 생체 내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수만개 단백질이 코딩된 디지털 정보가 쓰여 있다. 적혈구 안에서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도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항체도 모두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실질적으로 우리 몸을 생명체로 만들어주는 물질이다. 디엔에이의 정보는 핵산이라는 물질의 염기에 쓰여 있다. AGTC로 구성된 이 4종류의 염기서열을 3개씩 끊어 읽으면 아미노산 하나를 코딩하는 코돈이 된다. 아미노산을 길게 사슬처럼 연결하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디엔에이의 염기서열 정보만 알면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왜냐하면 단백질의 기능은 아미노산 서열이 아니라 단백질의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미노산의 중합체가 어떻게 접히고 뭉쳐서 단백질의 모양을 만드는지를 알려면, 엑스선 등을 투사해 파악해야만 한다. 구조생물학이라 불리는 생물학의 한 분야는, 단백질을 추출하고 그 단백질의 구조를 결정하는 일을 해왔고, 그 방법만이 유일하게 단백질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방법이었다. 아미노산 서열만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문제는, 생물학의 난제로 50년 이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 대부분의 단백질 구조는 아미노산 염기서열을 복사해 붙여넣는 것만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엄청난 일이다. 매일 유전체 염기서열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는 시대에, 염기서열만 가지고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단백질 구조는 생물학의 기초연구에도 중요하지만, 단백질을 표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연구에 더욱 필수적이다. 이제 생물학과 의학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며칠 전엔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5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놀라운 일이다. 중국은 이제 대부분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동등한 과학기술 강국이 되어버렸다. 중국이 달 탐사선 착륙에 성공한 바로 그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의 해임을 정부에 요구했다. 물론 항우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부 갈등으로 구설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이 극명한 대비가 보여주는 우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딥마인드의 대표 허사비스는 우리가 신봉하는 정규교육의 수혜자가 아니다. 그는 게이머로 경력을 시작했다. 8살에 체스 상금을 받아 컴퓨터를 샀고,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그가 알파고를 만든 이유도 바둑이라는 게임을 정복하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이미 15살에 게임 개발자로 취업을 했고, 이후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하지만 그의 정체성은 게이머에 더욱 가까웠다. 허사비스와 알파폴드의 성공은, 이제 과학의 혁신조차 더이상 대학이 아닌 민간기업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인공지능 대학원을 만들고 인공지능 인재 10만명을 키우겠다는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 발언이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홍보되고 있다. 한국이 위기에 강하다는 건 자랑이 아니다. 국민이 그만큼 힘들게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이다. 코로나를 겨우 이겨내고 있지만, 혁신은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혁신에 약한 나라, 청와대는 윤석열과 추미애가 아니라 알파폴드와 창어 5호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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