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 l 작가
전남의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민 몇명이 번잡한 시간대에는 승강기를 층마다 세워가며 배송하지 말라고 택배 기사를 구박했다. 기분이 상한 택배 기사는 세대별 배송을 중단하고 배달물을 아파트 경비실 창고에 모조리 쌓아뒀다. 언론에 피해를 호소하고 나선 주민과 택배 기사는 서로를 윽박지르던 언쟁을 중단하고 거꾸로 상대방의 위력을 경쟁적으로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각자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양쪽 모두 잘못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양쪽 모두 갑일 수는 없다. 심지어 둘 다 갑과는 거리가 멀다.
‘갑질’이란 단어는 계약관계의 쌍방 중 힘이 더 큰 쪽을 갑으로 쓰는 거래 관행에서 나왔다. 타인의 경제적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이 권한 너머로 힘을 남용하는 폭력을 뜻한다. 택배 기사는 아파트 주민의 경제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의 권한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물건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불편함이다. 주민들도 택배 기사의 경제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 않다. 주민들이 택배 기사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불확실하고 간접적이다. 택배 기사의 밥줄은 언제나 택배 회사가 쥐고 있다. 계약서에 자신을 갑으로 표시해본 적이 있는 것도 택배 회사뿐이다. 소비자와 노동자 사이의 분쟁을 조율할 사업상 책임을 가진 것도 택배 회사다. 이 책임을 방기한 채 뒷짐 지고 서 있던 택배 회사는, 논란이 커지자 택배 기사가 사과문을 써서 언론에 발표하게 만드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손쉽게 일을 처리했다. 주민 수십 세대가 해내지 못한 일을 단박에 해냈다. 혹시 통찰력 넘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택배 기사를 교화한 걸까? 그럴 리는 없다. 갑질이다. 승리의 달콤함을 맛봤을 아파트 주민들도 몸담은 직장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약자는 왜 폭로를 선택할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폭로의 목적과 효과는 하나뿐이다. 똑같은 입장에 선 약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 택배 기사가 약자라면, 효과적인 폭로는 같은 입장의 하청 노동자를 향해야 한다.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는 고용주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아파트 주민이 약자라면, 아파트 거주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단지 내 승강기 사용 방식이나 택배 회사의 지역 순회 시간대를 조정하기 위한 단체협상을 해볼 수도 있었다. 전통적인 협동조합의 역할이다. 지금까지 궁지에 몰린 ‘을’들이 문제를 해결해온 방식이다. 과정은 어렵고 더디다. 그래서 연대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단숨에 게임의 승자가 되려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의 구경꾼을 향해 호소한다. 여론전의 우위를 점해서 눈앞의 상대를 해칠 능력을 획득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상대를 해칠 능력’이 주목할 부분이다. 그것만큼 갑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절박한 연대의 요청이라면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개념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을이다” “내가 갑질을 당했다” 대신 이렇게 말하면 된다. “나는 기분이 몹시 나쁘다.” 약자가 응당 느낄 감정이라면 누군가 공감해줄 것이다. 전형적인 갑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자신의 감정을 보호할 더 강력한 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법이 없다. 느끼는 바를 정직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갑일 리가 없지 않은가? 갑은 상처를 입히고, 위협하고, 기회를 박탈하고, 해고하고, 결국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차갑게 감정을 드러낸다.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을로 위장해서라도.
약자의 언어는 도둑질당할 때마다 조금씩 깎여나간다. 그건 단순히 진실을 왜곡하는 과장법이 아니라, 누군가 절박한 순간에 사용해야 할 기회를 미리 끌어다 써버리는 것이다. 생사여탈의 위기에 선 을에게 폭로는 최후의 수단이다. 을의 언어를 불신하고 냉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진짜 을들은 침묵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세상에는 한가하기 짝이 없는 징징거림만이 남는다. 임대차 3법 입안 이후 등장한 ‘세입자 갑질’이란 표현은 가히 징후적이기까지 하다. 앞으로는 대체 어떤 기상천외한 을들이 나타나 피해를 호소하게 될까? 불매운동에 갑질당한 대기업? 투표에 갑질당한 정치인? 시민운동에 갑질당한 정부? 정부에 갑질당한 세금체납자? 우리는 이렇게 진짜 갑들의 세계로 향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약자의 언어마저 갑들이 점탈하는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