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ㅣ책지성팀 선임기자
<한겨레>는 연초에 장강명과 김초엽의 에스에프 소설을 청탁해 실었다. 2020년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었다. 새롭게 펼쳐질 2020년이라는 연도에 관한 두 작가의 상상은 밝고 희망차기보다는 어둡고 비관적이라는 점에서 서로 통했다.
지난달 30일 미국의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팬데믹’을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 이에 앞서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 선정을 포기하고 “전례 없던 해 2020년의 단어들”이라며 ‘팬데믹’과 ‘코로나19’를 비롯해 모두 27개 단어를 열거했다. <옥스퍼드 사전> 대표는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던 해 2020년이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새로운 단어들로 가득했다는 사실은 조금 역설적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상상은 물론 현실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아직 코로나19와 팬데믹이 2020년을 휩쓸기 전에 장강명과 김초엽이 이해에 관한 음울한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 우연만은 아니다. 그리고 현실은 또 다른 상상을 낳는다. 사전 편찬자의 말문을 막히게 했던 2020년이 작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상상에 근거한 글쓰기를 추동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2차대전 시기의 점령과 봉쇄를 은유적으로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카뮈가 대여섯 살 나이에 목격한 스페인독감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지 않았을까.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가 ‘21세기의 <페스트>’라 할 새로운 문학작품의 창작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가 엉뚱한 것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물론 소재주의적 조급성은 피해야 하겠다. 코로나19 사태를 묵히고 삭혀 <페스트>처럼 깊이와 울림이 있는 작품으로 빚어내자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의성과 순발력에 기대어 사태의 한가운데를 꿰뚫는 작품 창작이 지금이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두어 달 사이에 나온 코로나19 합동 작품집들만 해도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혼자서는 무섭지만> <쓰지 않을 이야기> <코비드19의 봄> 등으로 다채롭다.
이 가운데 에스에프 소설집 <팬데믹>에 실린 배명훈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비말 차단이 지상과제가 된 시대의 풍경으로부터 ‘웃픈’ 상상을 길어 올린다. 이 소설 속 세계에서 차카타파로 대표되는 거센소리들은 금지되고 부드러운 음으로 대체된다. 2113년을 살아가는 주인공은 지난 세기의 야구 경기 중계 화면을 보다가 충격을 받는다. “세상에! 누군가가 짐을 밷었던 것이다! 그것도 선수가! 경기 중에!” 그동안 무심코 내뿜었던 침과 콧물 그리고 격음의 해방적 기능을 새삼 곱씹게 한다.
같은 책의 수록작인 김초엽의 ‘최후의 라이오니’는 감염병이 폭력과 공포를 수반함으로써 세계의 종말을 초래하는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함께 실린 듀나의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빙산의 꼭대기에 앉아”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으리라는 희망의 가능성에 의지해” 글을 쓰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사태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혼자서는 무섭지만>에 실린 글 ‘나는 미래에서 온 의사다’에서 방문 진료 의사 홍종원은 배달 노동자를 ‘전달 노동자’로 부른다. “존재와 존재를 연결”한다는 뜻에서다. 코로나는 단절과 고립을 강요하는 질병이지만, 치료의 궁극은 만남에 있다고 이 의사는 믿는다. “만남 그 자체에 미래의 치료에 대한 비밀이 있다.”
같은 책에 실린 오은 시인의 글 ‘모여서 먹는 것 ‘같은’’에서 주인공과 직장 동료들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회식을 한다. “꼭 모여서 먹는 것 같네요”라는 한 참가자의 소감에서 제목이 왔다. “예전에는 모여서 먹어도 외따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 ‘같음’이 주는 느낌이 더없이 따듯하고 소중하다.”
코로나19에 통째로 빼앗겨 버린 2020년도 어느덧 저물어간다. 괄호 쳐진 것만 같은 한 해를 보내며 그래도 우리가 얻은 게 있다면 만남과 접촉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만남과 접촉을 되찾기 위해서는 백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 생명과 환경과 사회 구조에 관한 근본적 사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먼저 온 미래’ 2020년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