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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개혁입법을 위해 노력하라 / 이강국

등록 2020-12-14 16:15수정 2020-12-15 14:09

이강국 ㅣ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바이든 행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하비어 베세라는 캘리포니아주의 법무장관이자 검찰총장이다. 그는 지난 5월 에이비5(AB5)법에 기초하여 우버와 리프트 같은 차량 공유 업체를 기소했다.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이들 기업이 계약사업자를 최저임금과 초과근무수당, 유급휴가 등을 보장하는 정식 직원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에이비5법은 독립적인 계약사업자를 정의할 때 사업주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고, 해당 사업주의 통상적 사업 외의 업무를 하며, 동일한 업종에서 독립적으로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이는 플랫폼 노동의 제공자를 독립계약자로 분류하여 중간층이 몰락하고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저임금과 불안정에 시달리던 긱(gig)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한 이 결정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이렇게 법을 통해 제도화된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공장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발전소에서 하루에 3명의 노동자가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혀서 목숨을 잃는다. 이 비극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한 재해를 발생시킨 책임이 있는 기업과 경영자를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기 위한 것이다. 현재의 산업안전법은 사망사고의 평균 벌금이 약 45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처벌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이 법은 특히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과 경영자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추정하고 입증책임을 그들이 지도록 한다. 또한 도급이나 용역 등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에 대해서도 원청에 명확히 책임을 물리고자 한다. 그러나 야당들이 뜻을 모았고 여당 대표도 통과를 장담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번 국회에서 아직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 관련 법도 실망스럽다. 국회를 통과한 노동법 개정안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노력이라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의 권리 확대와 거리가 멀다. 먼저 단체교섭의 유효 기간을 최대 3년으로 연장하여 노동 3권을 약화시켰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노력이 억제되고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소수노조의 노동 3권이 약화될 수 있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무시했다. 재계는 해고자,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여 반기업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법원 판례에서 이들도 초기업 단위의 노조 가입이 가능했다. 이번 개정은 이들의 기업별 노조 가입을 허용하지만 비종사자 조합원의 노조 활동에 여러 제약을 가했다.

한편 재벌에게로의 경제력 집중과 소유주 일가의 전횡을 막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추진되어온 공정경제 3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 법은 박근혜 정부나 이전에 민주당이 추진했던 안에 비해 후퇴했다는 비판이 높다. 특히 애초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공약을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여당은 재계의 반발을 배경으로 검찰의 권력을 키워준다는 핑계를 대며 전속고발권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룰도 사외이사 감사위원의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분리하여 완화했다.

개혁입법은 지지부진한데 한국 사회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과제다. 유전무죄라 하듯이 현실에서 법의 판단과 적용이 공정하지 않고, 법이 부자와 기득권자의 편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검찰개혁에 힘쓰는 만큼 개혁입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것은 사람이 먼저고 노동을 존중한다는 약속을 법으로 만드는 데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니던가.

참, 안타깝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에이비5법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운전기사나 배달기사를 독립적인 사업자로 간주하는 주민발의안이 주민투표에서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2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이 발의안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개혁입법을 한사코 반대하는 재계와 보수언론을 보면 이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돈과 기득권에 맞서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입법을 위한 싸움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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