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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용산 기지의 반환, 용산공원의 밑판 / 배정한

등록 2020-12-18 13:21수정 2020-12-19 02:35

용산공원 기본설계(안)의 조감도.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제공
용산공원 기본설계(안)의 조감도.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제공

코로나바이러스의 재확산이 사회를 뒤흔들며 일상을 옥죄는 연말, 그나마 반가운 뉴스를 보았다. 지난 11일, 정부는 미국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개최해 용산 미군기지 내 2개 구역과 서울, 대구, 의정부, 동두천, 포항 등지의 11개 미군기지를 반환받기로 했다. 오염 정화의 책임과 환경 관리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논의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환경오염 정화 비용 부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반환의 상징성에만 치중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장기간 지연된 반환 과정에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점만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번 반환은 공전을 거듭해온 용산공원의 조성을 앞당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4년 한미 양국이 용산 기지 이전 협상을 타결한 지 17년 만에 기지의 일부가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질곡의 근현대사가 적층된 금단의 땅, 116년간 지도에서 삭제된 서울 한복판 미지의 땅의 귀환이다. 돌려받기로 결정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 위쪽의 ‘스포츠필드’와 기지 동남쪽의 ‘소프트볼 경기장’ 부지로, 면적은 5만3418㎡이다. 반환될 땅 전체의 2.6%에 불과하지만, 두 구역은 향후 공원의 관문 역할을 할 핵심 공간이자 최소한의 손질만 하면 당장에라도 임시 개방해 잠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지녔다.

정부가 순차적 부분 반환 방식을 취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기지 전체의 이전과 폐쇄가 완전히 끝난 뒤에 반환 절차에 들어가는 것보다 공원 조성 기간을 훨씬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순차적 반환은 임시 공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2018년 말에 완성된 기본설계(안)을 공론화 과정을 거쳐 확정하고 기지 이전과 반환이 완료된 뒤에야 공사에 들어가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용산공원의 문은 빨라야 2030년대 초에나 열릴 전망이다. 하지만 공식 개장 전이라도 순차적 반환 부지들을 임시 공원으로 유연하게 쓸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청나라, 일본, 미국의 군대가 차례로 주둔하면서 용산 기지는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시민 2천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용산 기지의 존재와 공원화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20%에도 미치지 않는다. 여의도만 한 면적, 축구장 400개가 들어갈 크기의 초대형 공원이 들어선다지만 우리는 이 땅이 생경하기만 하다. 이번에 우선 결정된 반환 부지를 임시 공원으로 활용한다면 낯선 땅과 천천히 사귀며 조금씩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장기간의 반환 절차가 끝나기 전에 미지의 땅과 먼저 친해지면서 공원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반환뿐 아니라 올해에는 기지와 시민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여럿 있었다. 8월부터는 기지 동남쪽 미군 장교 숙소 부지가 개방되어 누구나 자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이 개방 부지의 활용 아이디어를 청년들에게 묻는 공모전이 진행됐다. 용산공원의 새 이름을 짓는 공모전 결과도 곧 발표된다. 용산공원 친해지기, 함께 만들기, 가꿔나가기라는 단계별로 운영될 국민 소통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번 주까지 ‘용산공원 국민참여단’을 공개 모집했다. 참여단은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워크숍을 통해 기본설계(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국민 권고안을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반환, 개방, 소통이 동시에 일어나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정부와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이 함께 참여해 공원의 여백을 하나씩 채워갈 밑판이 마련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전시적 성과주의와 과속의 유혹이 용산공원의 여정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배정한ㅣ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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