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전 의원이 지난 17일 “공수처가 옛날 안기부 ‘사찰 정치’랑 뭐가 다르냐”는 말을 했다.
그는 이른바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진중권·서민·김경률·권경애·강양구 지음) 10만부 판매를 기념하는 온라인 북 콘서트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아주 허심탄회하게 공수처에 대해 술 마시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 ‘7000여명의 판검사와 국회의원만 수사하는 기관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법원이나 검찰을 뒤지고 다니며 사건을 찾으러 다닐 것이고, 그러면 옛날에 우리가 치를 떨었던 안기부 사찰 정치와 뭐가 다르냐’고 이해찬 전 대표에게 말했었다.”
시간이 지난 뒤 “예전에 이렇게 얘기했다”는 방식으로 공수처를 국가안전기획부와 동급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속내를 공개한 셈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주재하며 독재정권 보위의 최전선에 섰던 기관이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권력기관의 범죄 사건마다 안기부장,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치안본부장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개입했다. 사건을 조작·은폐하면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다. 또 수천명의 아이오(정보관·IO)를 운용하며 정·관계는 물론 재계·언론계에까지 통제의 촉수를 뻗쳤다. 대학과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에는 ‘프락치’를 심어 감시했다.
검사 25명을 둬 대통령,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국가정보원 등 3급 이상 공무원,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 등의 비리를 수사하게 한 공수처를 안기부 사찰에 비유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규모와 대상, 권한도 비교 불가다. ‘판검사 수사기관이 세계에 없다’는 말 또한 ‘제 식구 감싸기’를 일삼는 한국 검찰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김학의 사건, 검사 룸살롱 접대비 96만2000원 계산 방법만 봐도 공수처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걸 비교한 이유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비유에 달라붙은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워 비교 대상에 혐오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다. 중도적 목소리를 내며 탈진영을 강조하던 정치인이 특정 진영을 겨냥해 선동적 언어를 쓰며 ‘흑화’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씁쓸하다.
손원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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