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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배타적인 내 자식 사랑 / 김선기

등록 2020-12-23 14:50수정 2020-12-24 02:41

누구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꿈꾼다. 허나 팍팍한 현실에서는 서로를 향한 존중마저 쉽지 않다. 오직 하나,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김포/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누구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꿈꾼다. 허나 팍팍한 현실에서는 서로를 향한 존중마저 쉽지 않다. 오직 하나,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김포/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공인의 자녀들이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딸 등이 그 주인공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 게, 우리는 지난 십여년간 부모의 ‘과’를 지적하기 위해 동원된 자녀들의 이름을 수도 없이 알고 있다. 이미 성인이 된 자녀의 일에 부모의 권력이 개입하였을 것이라는 가설이 너무나도 쉽게 제기되며, 자녀가 미성년자 시절에 썼던 블로그 게시물까지 탈탈 털어서 부모의 흠으로 삼는 행태가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군대나 입시, 취업 문제와 관련한 ‘엄빠 찬스’는 단골 레퍼토리다.

6년 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후보 시절의 일이다. 외고 폐지를 주장했던 조희연 교육감의 자녀 두 사람이 외고에 다닌다는 사실이 상대편으로부터 공격 대상이 됐다. 당시 나는 자녀들이 외고에 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한 채 조희연 후보가 자녀를 외고에 ‘보냈다’라고 말하는 시류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청소년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제하는 인식을 겨냥한 것이다. 부모와 자녀는 별개의 존재이며, 아무리 그 자녀가 어리다 할지라도 그의 개별성과 독립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조금 나아가서 단순히 부모와 자녀는 별개의 존재라는 원론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우리 윗세대가 가지고 있던 평균적인 양육관에 대해서 좀 더 질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당과 정파를 막론하고 자녀 문제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직간접적으로 부모의 권력과 권한이 개입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세대를 길러낸 많은 부모가 기회가 된다면 가능한 한 반칙까지도 동원해가면서 내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도록, 결과적으로 세대 내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도록 하는 ‘계급 재생산 실천’을 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부모들, 특히 엘리트 계층에 가까운 부모들은 사적 모임에서도 자녀 이야기를 마치 스포츠처럼 즐기는 경우도 다반사다. 어린 시절 얼마나 비싼 유치원을 다녔고 내 아이가 얼마나 천재성을 갖는지에서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자녀의 입시, 취업, 결혼 성공담으로 이야기꽃이 핀다. 이러한 양육 문화로 인해 그 안에 있는 정치인이나 기자들은 ‘자녀들 뒷조사를 하면 뭔가 건질 만한 건이 나올 것’이라는 동물적인 감각을 체화하게 된 것 아닐까.

부모가 만 19살이 넘은 성인 청년들에게도 물질적 지원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독자적이고 또 포괄적인 청년정책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대학 등록금 감당이 어려운 부모들이 많다는 것을 잘 상상하지 못하는 엘리트 식자들은 ‘부모 돈으로 먹고 자고 공부하는’ 청년들을 왜 정책적으로 지원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모든 제도 설계 또한 청년의 뒤에 부모가 존재한다는 점을 이미 전제한다. 부모로부터의 폭력 내지는 갈등, 불화로 인해 가정을 떠난 이른바 ‘탈가정청년’들도 정책의 도움을 받으려면 법적 부모로부터 승인을 얻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내 자식에게만 다 해주겠다는 경쟁적인 양육 문화를 기성세대와 연결지어 이야기했지만, 이게 청년세대라고 해서 조금 다르게 바뀔까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도 많다. 전례 없는 비혼과 비출산의 향연 이면에도, 여전히 내 아이만큼은 완벽하게 키우겠다는 의지, 혹은 나는 그것이 꼭 좋은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랑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또래의 부모들이 적지 않다.가끔 청년들이 ‘내 아이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발화를 할 때, 그것이 ‘내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어야 할 텐데 하는 우려도 앞서게 된다. ‘내 아이’가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내 자식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이 자랑스럽기보다는 부끄럽게 여겨지는, 그런 문화부터 만들어야 한다.

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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