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해고자로 산다는 것 (하) / 김계월

등록 2020-12-23 18:22수정 2022-01-11 15:30

2020 공모전
청계천 물이 얼기 전에, 눈이 내려 천막 앞마당을 쓸기 전에 복직해야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농성장 앞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말이 해고자들과 똑같다며, 너무 슬프다며 노래를 부르신다.

김계월ㅣ항공기 기내 청소 노동자

그런데 어느 날,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고, 우리의 일터인 인천공항까지 덮쳤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온 죄밖에 없었다. 3월 한달, 우리 케이오 회사 분위기는 적막 그 자체였다. 곧 회사는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공지를 했다. 일방적이었다. 팀장의 브리핑을 듣기 위해 동료들이 대기실을 가득 채웠다. 그는 회사의 이런저런 핑계를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팀장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에 동의하실 건지요. 무기한은 언제 회사가 나를 불러줄지도 모르는,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상태입니다. 아무리 1노조(한국노총)가 교섭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요. 위기가 찾아오면 모두 고통 분담이라도 해야 할 대안이나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노조와 회사가 한편이 되어 발표한 공지 내용은 케이오 사원들을 깊은 고민과 갈등으로 내몰았다. 그 일주일, 선택의 시간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누구는 두통에 시달린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살이 2㎏이나 빠졌다고 했다. 수석 감독한테 작업복을 건네주며 “다음에 저 불러주면 작업복 돌려주세요” 하고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서는 모습은 슬픔을 떠나 처절했다.

그렇게 백여명이 무기한 무급휴직에 사인했다. 공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넓은 활주로에 정지되어 있는 아시아나 항공기를 보니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월11일, 다섯명의 노동자와 함께 정리해고 당했다. 내가 정규직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해고했을까. 비정규직, 그것도 하청 노동자이기 때문에, 아니 민주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에 회사는 더 쉽게 해고를 했을 것이다.

민주노조 조합원 여섯명은 해고만은 막아달라고 했지만, 회사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협상을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5월15일, 종각에 있는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천막농성 3일 만에, 그것도 5·18 광주민주항쟁 40주년 기념일에 종로구청에 의해 천막은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농성 천막은 총 세번 강제로 철거됐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다시 농성 투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40리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든 해고를 금지하라는 요구를 걸고 그 긴 길을 나섰다. 잠실에서 출발하여 동대문 평화시장 전태일다리를 밟았고, 종착지인 종각 금호아시아나 본사 농성 천막까지 총 40리 길을 우리는 함께 걸었다. 해고자가 되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연대의 힘이 아니면 헤쳐나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습한 기온 때문에 겨드랑이 땀띠로 살이 쓰렸고, 부족한 잠에 길거리에서 잠깐 눈 붙여 가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농성 투쟁 두 달여 만인 7월13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 7월1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다. 그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동지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우리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변했다.

“… 행한 해고는 부당해고임을 인정한다. 이 사건 사용자는 이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이 사건 노동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그러나 회사는 석 달이 지나도록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간 지도 180일이 지나고 있다. 매일 아침 고용노동청, 여의도 산업은행, 저녁에는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원청에서 복직 투쟁을 이어갔다. 정부에선 아시아나항공에 기간산업 안정기금으로 국민 세금 2조4천억원을 투입했다고 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뭘 잘못이라도 한 것인 양, 그 책임이 노동자 탓인 양.

오늘도 지부장님은 이른 아침 길을 쓸고 계신다. 청계천 물이 얼기 전에, 눈이 내려 천막 앞마당을 쓸기 전에 복직해야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농성장 앞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말이 해고자들과 똑같다며, 너무 슬프다며 노래를 부르신다.

“찬 바람 부는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나는 오늘도 이 노래와 함께 고용노동청 앞에서 아침 피켓 선전전을 한다. 내 삶의 터전, 인천공항 현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며.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올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최우수상 수상작이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1.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비루한 엘리트들 [한겨레 프리즘] 2.

비루한 엘리트들 [한겨레 프리즘]

무너진 사법 위에 법치를 세울 수 있는가 [세상읽기] 3.

무너진 사법 위에 법치를 세울 수 있는가 [세상읽기]

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김연철 칼럼] 4.

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김연철 칼럼]

[사설] 공수처, 국민을 믿고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하라 5.

[사설] 공수처, 국민을 믿고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하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