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규ㅣ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사회적참사특별법이 개정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피해자 지원 등을 다루는 조사위원회의 활동기한이 연장됐다. 그런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업무에서 유독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만을 배제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점점 귀 기울이는 방향으로 사회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충격이었다.
사참위 연장을 반대하는 일부 피해자의 목소리와 진상규명이 다 끝났다는 환경부의 입장이 기이하게 조합돼 명분이 세워졌다. 일부 피해자들이 사참위 연장을 반대하는 이유가 진상규명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점, 환경부 자체가 중요한 진상규명의 대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강력한 로비도 있었을 수 있다.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진상규명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를 먼저 얘기해야 했다.
난민신청자들의 면담조서가 조작됐다. 진술이 없었음에도 박해 가능성 없이 혜택을 받기 위해 신청하였다는 내용이 조서에 기록됐다.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에 이른다. 적격자를 줄이고 절차의 신속을 기하라는 지침이 심사공무원들에게 주어졌고 부실, 조작 심사는 구조적인 것이었다. 재신청과 재심사가 진행 중이니까 해결된 것인가. 누군가 이를 발견하고 문제제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법무부는 반성은커녕 소위 ‘가짜’ 난민을 가리기 위해 온갖 절차를 도입하는 난민법 개정안을 내놓으려 한다. 사실상 난민면접조서 조작을 법제화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회적 약자, 힘없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야 하고,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우리는 퇴보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가.
모 언론사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북한인권단체들에 대한 통일부의 이례적 사무검사에 대한 문의였다. 유엔인권특별보고관이 이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는데, 유엔 인권전문가가 직접 이런 행보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고 심각한 것 아니냐고.
통일부의 사무검사. 궁색한 변명들이 이어졌지만 시민사회에 대한 부당한 통제였음을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2009년 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위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방한한 유엔 전문가와 관련 단체들을 맹비난했다. “대한민국에선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기보다는 과잉이 문제가 될 정도다. (…) 대한민국을 인권후진국으로 낙인찍으려는 세력은 세계 앞에서 (…) 반(反)국민 집단이다. (…) 정부는 (…) 당당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위 특별보고관은 그 후 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소위 ‘대북전단금지법’이 통과됐다. 강력한 형사처벌까지 강제하는 접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민의 생명·안전을 강조하지만 그렇게 치면 북한에 대한 모든 비판을 금지해야 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남북 합의의 존중, 이에 대한 충분한 대국민 설명과 설득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국제적 우려를 부각시키며 이를 비난하는 일부 정치세력도 진정성이 의심되기는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와 국제적 우려가 기준이라면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 폐지가 우선일 텐데 이 세력은 국가보안법을 통해 왜곡된 냉전체제를 유지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앞장서 온 세력이다. 심지어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핑계로 남한에서 처음 모두 구금되는 탈북자들로부터 피구금자로서의 권리를 박탈하고 침묵을 강요하자는 법안을 냈던 세력이다.
스스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 채, 너무도 쉽게 일방적인 말들을 쏟아붓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편향성과 선입견, 무지와 무능, 게으름, 비겁함을 때론 ‘객관적’ 입장으로, 때론 인권 등 가치적 접근으로 포장하고 합리화한다. 왜 다른 입장이나 비판적 접근은 모두 적이 되어야 하는가.
2021년이 두렵다. 모든 통제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코로나 시대는 이어질 것이고 무제한, 무차별 권력투쟁만이 난무할 서울시장 등 재보선, 2022년의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들이 놓여 있다. 올해보다 더욱 암울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두려워하지 말자. 희망과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힘을 모으면 되는 문제다. 두려워하자. 스스로의 언행과 책임을 진정 두려워할 줄 아는 용기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