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命人) ㅣ <회사를 해고하다> 저자
나는 얼마 전 2020년 장흥군 청소년들의 노동인권 의식 및 노동 실태조사와 연구에 참여했다. 전라남도에서는, ‘군 단위 지역’ 고등학생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한 것도, 일하는 청소년의 노동 실태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노동인권 전반에 대한 의식조사를 병행한 것도 장흥군이 처음이다.
사회에 대한 인식, 노동·노동자에 대한 인식,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권리, 노동관계법 인지 여부, 지향하는 삶과 노동, 교육 및 노동인권 교육 등 ‘노동인권 의식’에 관한 영역과 ‘아르바이트 노동 실태’, ‘장흥군 청소년 노동인권 이행 수준’ 등의 영역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각 72문항, 혹은 34문항에 대하여 총 607명의 청소년이 설문 조사에 응하였다.
장흥군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한장 한장의 설문지를 읽고 분석하는 일은 살며시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참담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아 연구자들에게나 지역사회 전체에 여러 숙제를 남겼는데, 정작 직접 설문을 설계해놓고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장흥군 청소년의 몇몇 응답 결과는 더욱 마음에 오래 남는다.
첫째,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치 있거나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83.6%에 달했다. 그중 “정말 그렇다”고 응답한 청소년도 32%나 되었다. 둘째, ‘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성인이 되어도 장흥 지역에 정착해 살고 싶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38.9%였다. 남성 청소년이나 특성화고 학생으로 보면 양쪽 다 44.4%의 비율로 성인이 되어도 장흥 지역에 정착해서 사는 것을 희망했다. 셋째, ‘농민이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다면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전체 중 58.5%, 남성 청소년과 특성화고 학생 중엔 63.3%, 특히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의 경우엔 69.3%에 달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장흥군 청소년들의 경우만 그럴까? 다른 농어촌 지역 청소년들의 경우는 어떨까? 도시 지역 청소년들과 농어촌 지역 청소년들의 생각은 많이 다를까?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쩌면 기성세대에게 젊은이들이란 도시 생활을 선호하며, 농사같이 힘든 일은 도무지 하기 싫어하고,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최고라 여길 거라 생각되는 존재는 아니었을까? 농어촌 지역에서 젊은이들을 만나기 힘든 이유를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찾고 있었을까?
농어촌 지역에도 농사를 가르치는 학교, 이른바 ‘농고’는 이미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나 학교들도 이른바 ‘인 서울’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고 있지 않나? 취업을 목표로 하는 ‘직업계 고등학교’라고 좀 다를까? 농어촌 지역에서 태어나 아직 지역에 살고 있어도 ‘열심히’ 공부하여 어떻게든 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게 이 사회의 교육 정책이 아니었나?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짓거나,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교육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이런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교육은 어느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청소년을 일상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비빌 언덕이 되어줄 부모와 교사와 이웃 어른들은 얼마나 있을까?
어쩌면 장흥군 청소년들의 이 목소리는, 자본주의가 태생부터 인위적으로 분리해놓은 ‘자연’과 ‘사회’를 잇고, 노동의 본래적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는, 기성세대는 애써 잊어왔던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고 있는 교훈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성실하게 응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