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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광화문광장, 친절해질까 / 성연철

등록 2021-01-03 16:13수정 2021-01-04 02:09

성연철 ㅣ 전국팀장

올해 10월께면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마주하게 된다.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800억원을 들여 ‘사람이 쉬고 걷기 편한 광화문광장’을 만들겠다는 서울시 계획이 무난히 이뤄진다면 말이다.

양쪽 6차선 도로 탓에 섬이 된 광장을 한쪽(서쪽)으로 붙여 시민이 편하게 드나들도록 하겠다는 게 새 광화문광장 사업의 얼개다. 광장은 10년 전 은행나무가 늘어섰던 중앙분리대에서 너비 34m, 길이 557m의 화강암 판으로 바뀌었다가 덩치를 키워 세종문화회관 쪽에 어엿한 ‘육지’로 자리를 잡게 되는 셈이다.

모든 청사진이 그러하듯 새 광화문광장 청사진도 웅장했다. “서울 도심 심장부인 광화문광장이 회색을 벗고, 녹색의 생태 문명거점 공간으로 변모하고, 그 변화를 시작으로 보행광장을 시민 품으로 돌려드리는 날이 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지난 11월 첫 삽을 뜬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의 각오였다.

그런데 회의적이다. 과연 ‘보행광장’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지 갸우뚱하게 된다.

광장 북단은 북악산과 청와대, 경복궁이 막아선다. 서쪽으로는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청사, 세종문화회관이 줄지어 서 있다. 동쪽은 더 삭막하다. 발굴 공사 가림막이 둘러싼 옛 의정부터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 건물, 케이티(KT) 사옥, 교보빌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행인을 압도하는 관공서와 대형 건물이 광장을 포위한 형국이다. 곳곳마다 간격을 두고 선 경찰들은 덤이다. 걸으며 들를 곳도, 통과해 갈 곳도 마땅찮다. 머무는 사람은 드물고 지나는 사람은 서두른다.

무척 권위적이란 점에서 광화문광장은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광장과 닮았다. 톈안먼 광장 역시 북쪽에 중국의 청와대 격인 중난하이와 쯔진청(자금성)이, 동서로는 중국국가박물관과 인민대회당이 에워싸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남단의 마오쩌둥 기념관과 쯔진청이 한눈에 들어오는 북쪽 징산공원으로 가려는 인파 덕에 활기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광화문과 다르다.

불리한 조건과 ‘봄이면 새 시장이 뽑히는데 왜 지금’이라는 의구심 속에 만드는 광화문광장이 청사진대로 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바람이 있다면 새 광장은 적어도 근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운 좋게 가본 외국의 몇몇 광장들은 걷거나 머물다 지치면 쉬 앉을 곳을 내줬다. 코로나19 이전 수많은 관광객으로 넘쳤던 로마의 스페인 광장은 중심에 있는 삼위일체 교회의 너른 계단이 공짜 쉼터 구실을 한다. 걷다 지친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저 앉아 쉰다. 뉴욕의 작은 광장과 공원들 역시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임자 없는 벤치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고풍스러운 청사 건물과 화려한 조명으로 유명한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광장은 친근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사람들은 고디바 초콜릿 상점을 비롯한 여러 상점과 앙증맞은 오줌싸개 소년 동상으로 몰려다닌다.

1968년 세워진 이래 터줏대감 구실을 하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황금색 세종대왕 동상, 압도하는 관공서 건물로 대표되는 광화문광장도 이번엔 어깨 힘을 좀 뺐으면 좋겠다.

테이블이나 의자라고는 외교부 청사 앞 공터의 커피 체인점 매장이 거의 유일한 광장. 공짜 자리라고는 단골 집회 터인 세종문화회관 돌계단 정도밖에 없는 광장. 그래서 극도로 인색하고 시민을 긴장시키는 광장.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도중 몇몇이 픽픽 쓰러지곤 했던 1980년대 국민학교 운동장 같은 이 광장이 좀 더 친절한 광장으로 탈바꿈하길 바란다. 딱히 뭘 사지 않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앉아 쉴 자리가 있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낼 만한 소소한 상점이 있어 단조로움과 심심함을 달래줬으면 싶다.

10년 만에 800억원을 들여 만든 광장이 그저 주변 정부나 외교부 청사, 미 대사관의 앞마당이 되도록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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