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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따라잡기’의 종말

등록 2021-01-12 16:50수정 2021-01-13 02:40

궁극적으로 문제는, 애당초에 한국의 지배층에 의해 선택되어 여태까지 한번도 본질적으로 수정된 적이 없는 따라잡기식 개발주의의 경로일 것이다. 사회적 정의, 약자의 인권을 위한 그 어떤 움직임도 쉽게 범죄시될 수 있는 초강경 반공 규율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개발’은 거의 유일신의 자리를 점하기에 이르렀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세계 체제 (준)주변부 후발 국가들의 피할 수 없는 공동 운명인지, 나는 소련에서 성장하면서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자주 듣곤 했다. 철강 생산 같은 전략 산업의 생산량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최고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은 스탈린 시대 이래의 (실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대체한) 국가의 주요 목표였다. 실제 1978년에 이르러 거의 3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소련 핵탄두의 수는 미국 핵탄두의 수를 드디어 추월했다. 단, 이 ‘추월’의 달성에 지나치게 올인한 나머지 경공업의 발달에 거의 자원을 배분할 여유가 없었던 소련 체제는 그 뒤로 10여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중국에서도 1950년대 말부터 소련과 미국을 제치고 ‘세계 1등’이 되는 것은, ‘사회주의’ 간판을 내건 좌파 개발주의적 체제로서의 목표였다. 중국이 실제로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앞지른 지 이미 15년이 지났고, 명목 국내총생산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이는 2028년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대기오염으로 인해 매년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죽게 되는 약 100만명의 중국인들에게 ‘세계 최강 국가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러시아나 중국과 그리 다르지 않게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문명국 따라잡기’는 불변의 사회 이데올로기였다. ‘따라잡기’의 성과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인당 국민소득의 숫자였다. 1994년, 이 숫자가 1만달러에 도달하자, 머지않아 외환위기라는 사상 최악의 경제 대란을 앞두고 있던 나라의 언론에서는 때아닌 자축의 장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기도 했었다. 2018년에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예 3만달러까지 넘었다. 지금은 어떨까? 만약 명목액수가 아닌 구매력비례(PPP)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 이야기하자면,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숫자(4만4292달러)는 이미 영국(4만4288달러)이나 예전의 식민 본국이었던 일본(4만1637달러)까지도 추월한 상태다. 그렇게 보면 한국은 이미 속칭 ‘선진국’ 중의 하나다. 경제 통계뿐만도 아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확인된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의 행정력이나 보건의료체계는 구미권을 뛰어넘을 정도다. 그러나 웬일인지, ‘선진국 문턱’과 같은 이야기가 떠들썩했던 1994년과 달리 나이브한 자축의 분위기는 이젠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숫자 차원의 따라잡기와 앞서가기, 그리고 세계 최고의 기술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 25년여 동안 뼈저리게 실감해왔기 때문이다. ‘헬’(지옥)이라고 흔히 표현되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의 실상은 대개 신자유주의, 즉 제약을 받지 않는 자본 갑질 문제 본위로 이해되곤 한다. 이는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과연 자본만이 갑질의 주체인가? 과거의 관존민비 관행은 전반적으로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검찰과 같은, 기소권을 독점하는 최강의 공무원 조직은 여태까지의 각종 관제 ‘간첩’ 조작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사법 시스템의 강자인 만큼 그 위치를 끝까지 고집하여 사법의 민주화를 애써 반대한다. 그런데 이 사회의 다른 강자들은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다른가? 심지어 하나의 사회적 계층으로서 자본에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보호막으로 이용하고 핍박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세계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0.7%에 불과하다. 10년 전만 해도 거의 3%였는데, 지금은 이처럼 100명의 비정규직 중에 단 한명만이 노조원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는 절반 넘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가입을 원천 불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함께 노조 활동도 같이 못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이외에 어디에도 없다.

경제 지표를 보면 이미 과거의 식민 본국인 일본뿐만 아니라 과거의 세계 패권 국가인 영국까지 추월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왜 강자와 약자 사이의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에 무조건적 복종 요구와 심리적 폭력, 갑질이 따르는 것일까? 경제 지표들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데, 왜 다수가 ‘몸’으로 실감하는 삶은 ‘지옥’ 같은 지경일까? 궁극적으로 문제는, 애당초에 한국의 지배층에 의해 선택되어 여태까지 한번도 본질적으로 수정된 적이 없는 따라잡기식 개발주의의 경로일 것이다. 사회적 정의, 약자의 인권을 위한 그 어떤 움직임도 쉽게 범죄시될 수 있는 초강경 반공 규율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개발’은 거의 유일신의 자리를 점하기에 이르렀다. 수출량, 국내총생산, 1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숫자들은, 개발의 신에 의해 한국 국민이 선택을 받아 개발의 ‘선민’(選民)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유사 종교적 상징쯤이 되었다. ‘개발교(敎)’ 사제들이 군인 출신인 만큼, ‘개발교’의 예배당이 된 회사 역시 병영화되고, 나아가서 사회 전체가 명령과 폭언이 난무하는 하나의 커다란 병영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1990년대에 군인 출신의 ‘개발교’ 사제들은 민간인으로 교체되었지만, 이 사이비 종교의 교리는 본질적으로 바뀐 적이 없다. 여전히 ‘지표’로 나타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권 보호 같은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식의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안 그래도 매일매일이 전쟁 같기만 하던 일터의 일상은,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완전히 전쟁터가 되었다. 군인과 민간인이 따로 없는 이 전쟁터에 무슨 인권이 있겠는가?

하지만 ‘선진국’을 따라잡으려고 발버둥 쳤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한국이야말로 경제적 ‘선진국’이 되었으며, ‘선진권’은 전반적으로 성장이 둔화되는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입사 이후 직장인의 83%가 격무와 과로, 상사의 폭언 등으로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이 ‘헬’ 같은 사회를, 사람이 살 만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위대한 역사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1897~1990)가 이야기했던 ‘문명화 과정’의 중심에는 강약이 엇갈리는 사회관계의 광의의 비폭력화가 있었다. 한국 사회의 비폭력화가 이루어지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특히 직장의 탈군사화와 사회 전반의 평등화, 사회적 관계들의 대등화 등이다. 대학 평준화를 통한 학벌 카스트 제도의 타파가 필요하고,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를 통한 기업의 민주화부터 필요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설령 10만달러가 되어도, 시민적 평등을 결여한, 권력자·강자 본위의 폭력적 사회는 행복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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