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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교수식당 / 김우재

등록 2021-02-01 14:05수정 2021-02-02 12:31

김우재 ㅣ 낯선 과학자

대학원 시절을 보낸 포스텍에는 계급별 식당이 존재했다. 가장 싼 학생식당은 주로 학생들이 이용했고, 음식은 형편없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학생식당에 가느니 음식 배달을 시켰다. 학부 시절을 보낸 연세대에도 계급별 식당이 있었는데, 가장 싼 학식의 밥은 매일 가서 먹을 정도가 아니었다. 최근에 다시 갔을 때는 학식도 많이 발전했다는 걸 느꼈는데, 가격은 학교 외부와 크게 경쟁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해외초청과학자로 잠시 머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원식당도 밥을 맛있게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흔히 군대 식사를 짬밥이라 부르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연구원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 식당을 이용하는 듯했다. 대전에서 만난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은 대부분 연구원의 식당이 형편없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정출연까지 한국의 학문후속세대는 형편없는 식사를 제공받는다.

올해 초부터 중국 하얼빈공업대학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이 없던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식사 문제가 그랬다. 하지만 연구소 직원의 안내로 방문한 학교식당에서 그런 걱정은 모두 기우임이 밝혀졌다. 대학의 중심거리에 위치한 커다란 건물 세 개가 모두 식당이었고, 각 건물은 3층에서 4층까지 각종 산해진미를 팔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 산해진미를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으로 팔고 있다는 사실이다. 먹어본 음식 대부분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즐겁게 웃고 떠들며 거창하지만 저렴한 식사를 즐기는 모습은, 한국과 미국, 캐나다를 다 돌아다니면서도 처음 목도한 광경이었다. 중국의 다른 학교에서 온 이들도 모두 입을 모아 자기 학교가 최고라고 말했다. 중국은 최소한 학문후속세대가 먹거리로 스트레스를 받게 하지 않는다.

대학원 시절, 교직원식당 구석에 고급 병풍으로 가려진 공간이 있었다. 거기서 학생들은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교수식당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는지, 항상 거기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세미나 연사도 거기서 밥을 먹었다. 물론 교수들만 세미나 연사와 밥을 먹는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어떻게든 대학원생과 유명한 과학자가 서로 만나게 하려고 애를 쓰는데, 한국에서 연사는 교수 차지였다. 그건 서울대는 물론 한국 주요 대학 모두 마찬가지였다. 서울대에도 교수들만 식사하는 고급식당이 있었고, 그곳은 학생식당과는 완벽하게 다른 분위기로 치장되어 있다. 학교 안에 그런 고급식당이 없는 학교들은 세미나 연사를 데리고 고급 일식집에 간다. 세미나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던 교수들이 일식집에서 미리 기다리다 밥만 먹고 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혹여라도 학생들이 그런 고급식당에 오는 날이면 그들은 교수 시중들기 바빴다. 한국의 대학과 연구소는 먹거리로 계급을 나눈다. 연구 실력으로 계급을 나누면 윗자리를 내놔야 할 게 뻔하니, 교수와 원장은 식당, 자동차, 회의장소 같은 허례허식으로 자신의 계급을 유지하려 애쓴다. 문제는 그게 모두 국민 세금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연구비 항목에서 회의비를 없애야 한다. 그 회의비는 학문후속세대가 아니라 교수와 원장의 지위 유지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얼빈공대 식당에선 학생과 교수가 섞여 밥을 먹는다. 심지어 누가 학생이고 교수인지, 그리고 누가 교수이고 교직원인지 구분조차 하기 어렵다. 물론 이곳에도 중요한 귀빈이 오면 대접하는 교수식당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처럼 매일의 일상에서 먹거리로 계급을 나누는 것 같지는 않다. 먹거리로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데, 먹거리로 차별을 당한 학문후속세대가 과연 자식에게 연구의 길을 권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한국 과학이 발전하려면 학문후속세대들에게 밥부터 제대로 먹여야 한다.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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