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 l 작가
그해 겨울은 올해만큼이나 추웠다. 온도계 눈금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졌고 며칠간 쏟아진 눈이 발목을 덮었다. 강원도 소도시의 밤이었다. 문 닫은 식당 주차장 구석의 어둠 속에서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화석처럼 앙상하게 마른 개 두 마리가 좁은 철장 안에서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물과 사료를 사다 앞에 놓아두었다. 개들은 네발로 서서 똑바로 걷지 못했다. 잠시 망설인 뒤 사료를 주려고 열었던 철장 문을 닫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걷지 못하니 아마 도망치지도 못할 거라 스스로를 속였지만, 내심 도망칠 수 있다면 그들이 멀리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길 바랐다. 그게 어디든 여기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몇달 뒤, 개 한 마리가 정말로 도망쳤음을 알게 되었다. 재물손괴죄로 내가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고발인은 자신이 견주가 아니며, 주인이 키울 여건이 안 돼서 떠넘긴 개들을 잠시 맡고 있었을 뿐이라는 겸손한 취지의 주장을 했다. 피고인인 나는 경찰과 법원에서 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로 스스로를 변론했다. 내 행동이 범죄가 될 수 있음은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해 내린 선택이 아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나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판사는 유죄를 선고했다. 동물보호법의 미비함을 충분히 알지만,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행위라 이런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어 유감이라고 덧붙이면서. 공정함을 넘어 필요 이상의 선의를 보여준 판결이었다.
의외로 이 사건은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개들이 비쩍 말라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카네코르소라는 맹견 품종이었기 때문이다. 기사와 방송에서 나는 ‘불쌍하다고 철장 열고 맹견 풀어준 A씨’로 소개되었다. A씨가 나였음을 자백한다. 여러 기사에 붙은 댓글을 주욱 살펴보았는데, 가장 아픈 건 이런 내용이었다. “그렇게 불쌍했으면 집으로 데려갔어야지. 어쩌라고 엄동설한에 개를 풀어놓냐.”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몇년간 스무 마리 정도 되는 유기동물이 우리집을 임시보호처로 거쳐 갔고, 나는 그중 한 마리를 입양했다. 동물이 버려지는 공식 같은 경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동물을 키운다. 반려동물을 책임질 수 없거나 혹은 반려동물이 낳은 새끼들까지는 전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동물을 지인에게 ‘맡긴다’. 지인은 또다른 지인에게 동물을 ‘맡긴다’. 마지막으로 이 동물은 양육에는 아무 관심이 없지만 동물을 가둬놓을 자투리땅을 가진 사람의 손에 ‘맡겨진다’. 가끔은 지폐 몇장의 사례금과 함께. ‘맡긴다’는 거래에 포함된 책임의 약속은 한 다리 건널 때마다 취약해지다가 어느 순간 증발해 버린다. 주인조차 책임질 수 없는 동물을 누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운 좋게 살아서 구조되지 않는 한 이 동물들은 언제 어디선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잡아먹히거나, 최선의 경우 안락사당하게 되어 있다. 다시 몇년 전 강원도의 겨울밤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결코 추위 속에서 굶주린 개들이 갇힌 철장 문을 열어놓는 시건방을 떨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보살핌 없이 반려동물들이 스스로 살아갈 더 나은 환경이 남아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행동도 일종의 동물 유기였다.
유기동물 문제는 눈에 보이는 동물 유기를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따뜻한 방석 위에 잠든 반려동물을 추위와 굶주림 속에 던져 버리는 악의적인 행동이 동물 유기라면, 동물 유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셈이다. 유기동물은 ‘더 나은 환경’이라는 가망 없는 약속의 반복 속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처럼 천천히 버려진다. ‘더 나은 환경’은 파양의 변명이 아니라 최초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동물 입양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져야 하고, 동물 입양 이력을 기록으로 남겨 습관적인 파양을 방지해야 한다. ‘내 생애 마지막 기회라면 나는 이 동물과 함께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모든 반려인에게 제도적으로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반려동물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하고, 특히 품종동물의 사육과 분양은 엄격한 기준에서 규제해야 한다. 동물 산업의 공급은 언제나 수요보다 훨씬 더 많다. 한 마리의 동물을 팔기 위해 다섯 마리의 동물을 잉여상품으로 생산하는 산업이 존재하는 한 동물 유기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