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방송국 아랫것들의 예의 (하) / 이보라

등록 2021-02-03 13:33수정 2022-01-11 15:26

2020 공모전
지방 출신이었던 다른 막내 작가는 80만원을 받았지만, 월세 때문에 부모님께 매달 20만원씩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하루 14시간 이상 노동을 했지만, 용돈을 받아야만 겨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푸념이 늘어지자 옆에 있던 인턴작가가 자신은 50만원을 받는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이보라(가명)ㅣ방송작가

아프면 알아서 빠져주는 게 이 바닥의 예의다.

방송작가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작사 면접을 보러 간 그날, 나는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일을 시작했다. 면접 올 때 노트북을 챙기라는 말은 ‘웬만하면 오늘부터 일을 시키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행복했다. 방송아카데미 출신도 아니고, 경력도 없는 자를 선택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러나 고마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정적으로 쉬는 날은 하루도 없었고, 명절 연휴 등 빨간 날에도 일을 했다. 1주일에 2~3일은 제작사에서 밤샘 작업을 해야만 했다. 화장실에는 머리를 감기 위한 샴푸와 린스도 구비되어 있었다. 식사는 근처 24시간 식당에서 무제한으로 시켜 먹을 수 있었다.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우리가 24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거였다.

출근한 지 1주일이 넘도록 나는 내 월급이 얼만지 몰랐다. 혹시 ‘돈 밝히는 사람’으로 찍힐까 두려워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동료인 막내 작가들과 친해져 서로의 월급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생겼다. 다른 막내 작가가 일러주길 내 월급은 70만원으로 시작해 3개월마다 10만원씩 오를 거라고 했다. 허탈했다. 우리는 최저시급을 각자 계산해봤다. 나는 시간당 1930원이었다. 2011년 당시 최저시급이 4230원이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말하는 순간 방송작가로서의 내 인생도 끝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월급 70만원 중 40만원을 저금했다. 온종일 일터에 있다 보니 돈 쓸 일이 없었던 거다. 게다가 본가에서 출퇴근했기 때문에 월세 나갈 걱정도 없었다. 지방 출신이었던 다른 막내 작가는 80만원을 받았지만, 월세 때문에 부모님께 매달 20만원씩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하루 14시간 이상 노동을 했지만, 용돈을 받아야만 겨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푸념이 늘어지자 옆에 있던 인턴작가가 자신은 50만원을 받는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는 촬영 테이프를 문서화하는 프리뷰 작업을 했는데, 만약 전문 프리뷰어에 맡기게 되면 월 200만원은 더 지출되는 일이었다.

대우는 부당했지만, 일은 즐거웠다. 출연자들 인생 이야기를 듣는 일, 그걸 영상으로 만드는 일 모두 재미있었다. 시청자 후기 게시판에 제작진들 고생한다는 글이라도 올라오면, 힘들고 괴로웠던 감정이 모두 잊혔다.

그렇게 그 제작사에서 1년을 꼬박 채우고 다른 제작사로 옮길 수 있었다. 월급도 직전에 받던 것보다 10만원이나 더 받았다. 나도 메인 선배도 상근이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문제는 제작사 대표였다. 하루는 나를 불러 놓고 자기 아들 숙제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거절 끝에 하게 됐다. 하지만 대표는 약속한 돈 10만원을 끝내 주지 않았다. 10만원이었지만 배신감이 몰려왔다. 더는 제작사에서 일하지 않겠노라 마음먹고 그곳을 나왔다.

그 후 나는 본사 프로그램에만 이력서를 넣었다. 최저임금은 받을 수 있고, 돈 떼일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간절히 원한 덕분인지 작가 경력 20개월 만에 본사 프로그램의 취재작가로 가게 됐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천국은 없었다. 작가는 사무실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자신의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방문객’이었다. 계약직 프리랜서 피디나 조연출에게도 쥐어지는 출입증이 작가에겐 발급되지 않았다.

그즈음 정부에서 운영하는 방송국에서 표준계약서를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노동자로 4대 보험 받는 건 아니지만, 억울한 일이 생기면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줄 계약서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게 있으면 은행에서 조금이나마 대출을 받을 자격이 주어졌다.

본사 프로그램이 종영되자마자 곧바로 정부에서 운영하는 방송국으로 옮겼다. 그곳에서도 문제는 있었다. 이틀 출근을 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기존에 받던 원고료를 한참 낮춰야만 했다. 출근일은 이틀이었지만, 매일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체계였다. 그래도 이때 계약서라는 걸 처음 써봤다. 그 한 걸음을 내딛는 데 10년이 걸렸다. 최근 엠비시(MBC) 보도국에서 일했던 방송작가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달라며 서울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많은 방송작가들이 여전히 ‘프리랜서’로 일하며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 나는 10년 후에도 계속 방송을 하고 싶다. 그만큼 이 일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때는 휴가도 쓰고, 퇴직금도 받으며 진짜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 제발.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다른 수기가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1.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비루한 엘리트들 [한겨레 프리즘] 2.

비루한 엘리트들 [한겨레 프리즘]

무너진 사법 위에 법치를 세울 수 있는가 [세상읽기] 3.

무너진 사법 위에 법치를 세울 수 있는가 [세상읽기]

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김연철 칼럼] 4.

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김연철 칼럼]

[사설] 공수처, 국민을 믿고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하라 5.

[사설] 공수처, 국민을 믿고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하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