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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인공지능 시대와 생각하는 손 / 명인

등록 2021-02-07 13:52수정 2021-02-08 02:40

명인(命人) ㅣ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강의를 하러 갔을 때 기자재에 문제가 생겨 준비해 간 피피티(PPT)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데, 교육장에 높은 단상이 있어 참여자들과 거리를 두고 내려다봐야 하거나 칠판도 없이 마이크와 피피티만 써야 할 땐 몹시 당혹스럽다. 교육 참여자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교육을 진행하기엔 피피티가 없는 편이 오히려 나을 때가 많고, 마이크가 없어서 손이 자유로워야 참여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눈을 맞추고 눈빛과 표정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글씨가 쉽게 미끄러지는 화이트보드보다는 세워 쓸 때와 뉘어서 쓸 때의 느낌이 달라 다채롭게 쓸 수 있고, 분필을 뚝뚝 부러뜨려가며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칠판이 훨씬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참여자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나 동영상이 있을 때만 최소한으로 피피티를 활용하는 편이다.

지금처럼 글을 쓸 땐 대개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나는 여전히 일기는 일기장에 쓰고 가끔은 손편지를 쓴다.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거나 연필을 깎는 일도 좋아한다. 만년필의 번지는 느낌과 슥삭슥삭 종이에 흑연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는 참 좋다.

교육 시 참여활동에서도 나는 크레파스나 매직, 흰 도화지나 색지를 나눠줄 때를 구별하는 편이다. 최첨단 시청각 교구의 시대에 ‘생각하는 손’이 사물의 ‘물성’을 만나게 하고야 마는 이런 방식은 단지 과거회귀적인 복고풍 취향에 불과할까?

그런데 이젠 교육을 비대면으로 해야 한다 하니 걱정이 참 많았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도 아니고 주로 참여형인 인권교육임에랴. 나는 상상했다. 직접 공연장을 찾아온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호흡을 느끼며 공연을 하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축음기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또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때의 당혹감을.

그런데, 막상 실시간 화상 시스템으로 교육을 진행해보니 무수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교육과는 다른 상황이고, 조건에 따라 차이는 크겠지만 인원이 많지 않다면 교육진행자와 참여자 사이에 소통의 밀도가 더 높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비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원거리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팬데믹 시대에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교육과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동료들은 온라인 교육에 대한 이런 내 반응을 의아해한다. 나는 서로에 대한 책임으로 대면할 수 없는 조건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술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니냐고 대답한다. 물론 나는 여전히 분필 같은 사물의 물성을 포기하지 못한다.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만남도 포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중히 여기는 것들이 기술 자체와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기술이고, 누구에 의한 기술이냐’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들 중 정말로 우리가 필요해서 선택한 것은 얼마나 될까? 돈이 되지 않아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발달하는 기술은 얼마나 될까? 만일 정말로 사람을 위한 과학이라면 누군가가 달나라에 가는 것보다는 장애인들이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게 하는 기술이 훨씬 더 쉽지 않았을까?

<고스트워크>의 저자들은 인공지능이 끝내 사람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자동화 최종단계의 역설’을 품고 있다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노동 시장을 재구조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리처드 세넷은 <장인>에서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을 화두로 삶의 가치와 일의 의미를 추적한다. 결국 기술이든 교육이든 노동이든, 변화하는 삶의 지형 속에서 누가, 그것들의 본질과 새로운 가능성을 재구조화할 것이냐가 관건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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