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한겨레> 칼럼니스트 공모 마감까지 2주 남았습니다. 접수기간(2월23일 마감) 동안,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를 주제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존 칼럼니스트들의 기고를 매주 초 게재합니다.
무한히 넓은 종이 위에 짧은 선 두 개가 아무렇게나 그려져 있다고 하자. 하나는 나의 생각, 다른 하나는 내가 아닌 어떤 타인의 생각이다. 종이는 너무 넓고 선분은 너무 짧아서,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연히 가까이에 있다고 해도 여덟 팔(八) 자처럼 조금은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선분이 점점 길게 뻗어나간다고 하면, 별로 만날 것 같지 않던 두 개의 짧은 선분을 직선으로 탈바꿈시킨다면, 두 선은 광활한 종이 위 어느 한 지점인가에서 만나고야 만다.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 사이에 접점이 생긴다.
나는 당신을 찾기 위해 쓴다. 당신의 생각을 만나기 위해 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그 사람과 나의 정신세계가 혼연일체를 이루지는 않겠지만, 어느 한 지점에선가 나의 생각이 가닿는 곳에서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여덟 팔(八) 자를 사람 인(人) 자로 바꾸어줄 사람을 만나기 위해 쓴다.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난 두 개의 선은 공존하는 접점을 확인하자마자 이번에는 하염없이 멀어져 버린다. 사람 인(人) 자가 엑스(X)자로 바뀌어 버린다. 어느 한 가지에 대해 나와 생각이 같았던 사람이라도 다른 면에서는 내게 쉬이 동의해주지 않는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서 아주 비슷한 기울기로 직진하는 선도 있다. 그러면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대략 비슷한 생각을 꽤 오랫동안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언젠가는 다시 멀어져 버린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도 나의 모든 생각을 이해해주거나 모든 감정을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내었는데 상대방은 그저 기계적으로 맞장구를 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때가 있다. 반대로 나도 상대방에게 그럴 때가 있다. 두 사람의 생각이 만나려면 아직 멀었거나, 이미 잠시 만난 뒤 멀어지는 중일 때다.
그럴 때 우리의 생각이 왜 만나지 못하느냐며 통탄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이라는 무한히 넓은 종이 위에는 사실 수많은 생각의 선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다가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제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선, 그 선들과의 수많은 접점이 존재한다. 그 접점을 만나기 위해 나의 생각은 종이 위를 달린다. 직선이 아니라 꼬불꼬불 또박또박 글자를 적는다. 누군가가 무심히 그어 놓은 선, 누군가가 그린 동그라미, 수많은 누군가가 그리고 있는 수많은 생각에 가닿기를 바라며 쓴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고 내게 공감해줄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너무 깊이 공감한 나머지 나와 같은 길에 뛰어들어 멋진 동료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행복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랑데부를 꿈꾼다.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사람들이 천문학자의 연구 활동을 조금 더 응원해주기를, 그중 누군가는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달과 타이탄과 목성과 소행성을 연구하겠다고 나서주기를 매양 기다리며 염불하는 심정으로 쓴다.
사실 과학자가 사회에 나와 무언가를 논할 일은 많지 않다. 대중 매체에 이공계 종사자들의 업적은 자주 보도되지만, 그들이 논의하는 바를 직접 들어볼 기회는 타 분야에 비해 적다. 그 이유가 그들 사이에서 중요한 어떤 이슈가 사회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주제여서, 혹은 아무도 관심 가질 필요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이 글을 읽고 쓰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서 필자를 찾을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 필자만큼이나 독자도 찾기 어려운 게 아닐까? 우리 사회가 과학의 어떤 주제를 가지고 논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평소 대중 매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분야는 고등학교 이상 수준의 용어나 전문학설의 명칭이 과감하게 등장하는 반면, 이공계 특유의 용어나 그 정의(定義)는 ‘쉬운 말’로 풀어서 쓰거나, 지극히 짧은 사전적 풀이만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을 그렇게 읽어왔다면 쓸 때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읽을 때도 그렇게 피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이를 크게 펼칠수록, 그 위를 열심히 달릴수록 더 많은 접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다양한 분야의 더 많은 이야기가 커다란 지면 위를 종횡무진하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각이 싹트기를, 다양한 분야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창이 열리기를,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은 공감을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심채경 | 천문학자
리영희, 정운영, 조영래, 박완서…. 더는 만날 수 없지만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지성의 이름입니다. 시대의 죽비가 되고, 웃음이, 눈물이 되었던 <한겨레> 칼럼 필자들입니다. 오늘은 또 다른 필자들이 그 자리를 이고 집니다.
이제 <한겨레>는 언론 사상 처음으로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더 다양한 통찰과 감성을 발굴해 독자와 연결짓길 희망합니다. 희망이 절망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과거가 현재에게, 꿈이 꿈에게,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한칼’, 시작합니다. 함께해주세요.
■ 누가 : 할 말이 있는 지구인 누구(개인, 글쓰기모임 등 단체)든
■ 무엇을 1 : 전체 전문 주제(제한 없음)와 각 소재 등이 담긴 6~12회 기획안, 그중에 포함될 칼럼 2편(편당 2000자)과
■ 무엇을 2 : 공통 질문에 대한 300자 이하의 답변을
■언제 : 2월23일 22시까지 6주 동안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 보내실 곳 :
opinion@hani.co.kr (이메일 제목: <한칼 공모> 성함)
* 공통 질문(답변은 모두 300자 이하)은 4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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