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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설에 더 고립된 노인들 / 권영란

등록 2021-02-14 15:45수정 2021-02-15 02:38

설날인 12일 서울 창동에 사는 공윤진(10,오른쪽)·공연수(7)양이 연천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로 비대면 세배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설날인 12일 서울 창동에 사는 공윤진(10,오른쪽)·공연수(7)양이 연천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로 비대면 세배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란 ㅣ 진주 <지역쓰담> 대표

코로나19 이후 첫 설이었다. 예년처럼 온 가족이 모일 수가 없었다. 지역 간의 경계가 조심스럽고,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다른 5인 이상이 모일 수 없으니 이참에 차례를 아예 없애는 집도 있다지만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설 차례상 앞에는 달랑 늙은 부모들만 섰거나 형제 대표로 한둘이 더 와 있을 뿐이었다. 차례를 마치고 우르르 성묘를 가거나 친인척을 차례로 방문하며 세배하러 다니는 일도 없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집집마다 온라인·언택트로 치른 설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다. 설에 오지 못한 며느리가 시부모 설 용돈을 계좌이체로 보내왔더라, 형제간에 주는 선물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해결했다, 온라인 영상을 켜놓고 차례를 지내니 각각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형제들도 참여했다, 손자손녀가 영상으로 세배하고 할아버지는 세뱃돈을 바로 계좌이체 하더라 등…. 서로 어색하고 신기해하지만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이렇게라도 설을 쇤다 싶은 뿌듯함이 역력했다. 연휴 내내 티브이와 라디오에는 코로나19에 맞춤한 새로운 명절 문화인 양 연일 보도했다. 하지만 이게 대다수의 일반적인 모습일까.

경남 산청군 신안면 어느 마을. 1960년대까지는 가구 수 80호에 주민이 700~800명은 됐다. 지금은 설날 아침에도 40가구 50여명이 채 되지 않는 조용한 시골 동네다. 대부분 70대 이상인 주민들은 뭘 하고 있는지 고샅길에선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크게 질러도 아무도 나와 보지 않을 것 같다. 여든다섯 내리댁. 열아홉에 시집와 평생 이씨 집안 조상을 모셨지만 올해 설날은 더욱 낯설다. 겨우 가까이 있는 아들들만 번갈아 왔다 갔다. 그나마 1년에 몇번 손님처럼 찾아오던 손자손녀들은 코로나19로 얼굴 본 지 오래됐다. 명절이면 마을 입구를 메우던 성묘 차량도 보이지 않고 새로 지은 마을회관은 굳게 닫혀 있다. 불과 1년 전까지 마을회관에 모여 합동세배를 하던 풍습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명절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농어촌 노인들은 더욱 고립된 채 살고 있다. 내리댁은 요즘 혼잣말이 늘었다. 말 한마디 주고받을 사람이 없으니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 하루 종일 티브이를 켜놓는데 채널마다 노래자랑이다. 처음에는 신이 났는데 이젠 믄 지랄을 저리 하노 싶다. 올해 겨울은 몸이 더욱 힘들고 적적하다. 평소라면 겨우내 마을회관이 북적댔을 게다. 화투 치고 같이 밥해 먹고 추렴도 했건만 거동이 불편해져 하나둘 뜸해지더니 코로나19까지 겹쳐 마을회관마저 아예 폐쇄를 했다. 새로 지은 마을회관을 볼 때마다 내리댁은 사람이 없는데 저리 좋으몬 므하노 싶다. 그나마 찾아오던 재가방문 노인돌보미도 비대면으로 전환해 전화 몇통으로 대신한다. 마을버스가 하루에 두번 들어오지만 오르내리는 승객은 없다. 이러다 잠결에 숨이 넘어가도 어느 누가 알까나 겁이 덜컥 난다.

농어촌 지역 노인 소외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몇배로 가중됐다. 의식주의 가난함보다 점점 세상과 단절되는 일상이 더욱 힘들다. 비대면 언택트로 전환된 문화 속에 이들 농어촌 노인들이 의지할 것은 티브이와 휴대전화다. 세상과 소통하는 전부다. ‘노인 소외’가 의제로 등장한 건 제법 됐다. 노인은 산업사회에서 밀려나는 순간 비경제활동인구로, 사회복지서비스로는 수혜자로, 가족 단위에서는 부양가족으로 매겨진다.

하지만 그나마 은퇴 시기가 분명한 도시 노인의 경우다. 은퇴 시기가 불분명한 농어촌 지역 노인은 죽을 때까지 노동해야 하고, 이들의 가난과 소외는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욱 심화됐다. 아니 농어촌 지역의 소멸 위기를 논하면서 이들 노인의 상황을 슬쩍 외면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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