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 ㅣ 제주도립미술관장
2월5일 금요일, 제주 날씨 맑음.
그림일기를 썼다면 눈에 보이는 게 많아 그리고 싶은 것도 많은 날이었다. 하늘은 세룰리안블루로 쾌청, 나뭇잎은 비리디언으로 반짝, 코를 타고 넘어오는 공기는 찬 기운 없이 상쾌. 별나게 맑은 날씨다. 바다 너머로 전라도 끝자락인 육지가 보이는 기적적인 가시거리를 획득한 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근시인 걸 모르고 지낸 이가 도수에 맞는 안경을 쓴 것처럼 온 세상의 뿌연 기운이 선명하게 벗겨졌다. 다음날까지도 놀라운 맑음은 이어졌다.
2월6일 토요일, 제주 날씨 아주 맑음.
좋은 날씨가 이렇게 선명하게 각인된 건, 이 주말의 좋은 날을 야외에서 볕을 쬐며 보냈기 때문이다. 주말 점심께 이른 설 인사 겸 원로화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야외 평상에서 시작한 막걸리 한 잔은 햇볕을 찾아 자리를 옮기며 널찍한 바닥의 돗자리로까지 이어졌다. 봄을 알리며 핀 홍매화를 막걸리 위에 살짝 띄웠더니 잔 속에 봄이 가득 찼다. 하얀 제주막걸리 위에 뜬 진한 핑크색 꽃잎은 2021년 봄의 이미지가 됐다. 흥이 올라 만개한 수선화의 한가운데에 작게 맺힌 꽃술에도 한 모금의 막걸리를 흘려 마셨다. 잠시 꽃잎에 앉아 목을 축이는 나비가 된 듯했다.
제주도 서쪽에 위치한 작업실에선 역시 맑은 날씨 덕에 한라산이 한눈에 보였다. 눈에 걸리는 건물 하나 없이 멀리 있는 한라산이 코앞에 있는 듯 가까웠다. 정상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여러번 봐야만 감지하는 사실이 있는데, 한라산은 보는 지점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삼각형으로 생긴 전형적인 산의 모양인 순상 화산과 꼭대기에 점성이 큰 용암이 분출해 굳어진 종상 화산이 결합된 복합 화산체이기 때문에, 꼭대기 모양이 보는 지점에 달라진다. 한라산 봉우리를 닮아서 한라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감류 귤의 모양은, 그 귤이 맛있게 자라는 서귀포 쪽에서 보는 모양이다. 은하수 한(漢)에 당길 라(拏)를 써서 은하수를 잡아당긴다는 한라산이다. 직접 은하수를 보기 위해, 앞에 앉은 화가는 한밤중 한라산 정상에서 스케치를 한 일화를 전했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든 이 작가와의 대화는 늘 “시골 작업실에서 세상이 더 잘 보인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관점이 중요하다”로 정리가 된다. 변방에 있어야 중심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똑같이 긍정적 변방의식을 말하고 있는 대표작품은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인데, 그 책이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변방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변방에 대한 오해이다. 누구도 변방이 아닌 사람이 없고, 어떤 곳도 변방이 아닌 곳이 없고, 어떤 문명도 변방에서 시작되지 않은 문명이 없다.” 그리고 이 변방의식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쓰는 표현은 ‘숲속에 있는 사람은 숲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한라산 정상은 아직 설국인데, 내가 앉은 곳 정원에는 겨울을 견딘 수선화가 만개하고, 봄을 알리며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따뜻한 빛의 온도는 봄의 그것이었다. 2월3일이 입춘이었으니, 과연 한 계절이 슬라이드 필름을 짤깍 넘기듯이 선명하게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 시야에 겨울도 봄도 너무나 선명한데, 정작 계절은 아직 겨울도 봄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이었다. 두 계절의 선명한 공존, 이것은 한 계절의 변방에서만 보이는 것이었다. 문득 한라산에서 보는 은하수가 궁금해졌다. 한라산 정상에서 보는 밤하늘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작가가 그날 남긴 유명한 그림 <고원의 달밤>으로 짐작해볼 수밖에 없는 중심의 경험. 그림은 변방에서 중심을 보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인가. 내 중심의 시선을 벗어나 다른 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야말로 변방의 경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