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에 가입은 하지만, 실제로 실업급여를 받아본 적이 없다. 180일 동안 채워야 할 근로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일하고 싶어도 무조건 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무해야 한다. 주 15시간이 넘으면 사용자가 건강보험도 들고, 주휴수당도 줘야 하니까…. 그런 법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게끔 초단시간 근로자라는 틀에 가두어 놓은 셈이다.
김기영ㅣ영화예술강사
비정규 노동자로 살면서 마음 편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싶지만, 2020년이 유난히 힘든 시간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코로나19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휩쓸고 간 만큼 정규직이라고 별다르겠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각자가 겪는 현실의 무게감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울시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는 영화예술강사이다. 졸업 직후 영화사에서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로 계약을 맺고 캐스팅고까지 돌리다가 결국 엎어지고, 결혼 후 10여년간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미혼 시절에도 그다지 넉넉한 경제형편은 아니었기에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거나, 그마저 없으면 안 쓰면 되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외벌이 생활을 버텨왔는데,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이젠 단순히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하는 것처럼은 못해도 두 아이를 학원에라도 하나씩 보내주려면 지금처럼 애들 아빠 혼자 벌어서는 턱도 없는 이야기였다. 놀이터가 아니라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귄다는 요즘 아이들의 생활을 생각해 볼 때 학원은 사교육을 넘어 일종의 사교의 장소였던 셈이다. 어찌 보면 재취업은 내 자발적 의사에 따른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이었다.
재취업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흔 넘은 경단녀의 취업이 쉬울 리가 없었다. 출산과 육아로 10여년간 경력이 단절된데다가 대학에서 전공한 영화로는 도저히 취업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2급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고, 취업성공패키지의 도움을 받아 한 민간요양시설에 사회복지사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이후 2년 남짓 노인종합복지관의 계약직 사회복지사로, 때로는 육아휴직 대체 인력으로 일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노인복지 분야의 계약직 사회복지사로서의 하루하루는 보람차기도 했지만, 그만큼이나 힘들고 지치는 업무이기도 했다. 그나마도 일년 미만의 짧은 계약직이었기에, 언제나 몇 개월간의 계약이 끝나면 또다른 일자리를 찾아 구직 사이트를 헤매야 했다.
그렇게 불안한 단기 계약직 사회복지 대체 인력으로 일을 하던 중, 우연히 학교예술강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 때 전공도 살릴 수 있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지라 가르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예술강사 일을 시작한 것이 2017년, 딱 4년차 되는 아직 햇병아리 예술강사이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시간이 참 즐거웠기에 늘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좋은 예술강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직업적 불안정성은 예술강사도 단기계약직 사회복지사에 못지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불안정한 직업인지도 모른다. 예술강사는 초단시간 근로자라는 제약에 건강보험이 빠진 3대 보험만 가입이 된다. 고용보험에 가입은 하지만, 실제로 실업급여를 받아본 적이 없다. 180일 동안 채워야 할 근로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일하고 싶어도 무조건 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무해야 한다. 주 15시간이 넘으면 사용자가 건강보험도 들어줘야 하고, 주휴수당도 줘야 하니까…. 그런 법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게끔 초단시간 근로자라는 틀에 가두어 놓은 셈이다. 상여금, 퇴직금, 이런 것은 전혀 해당 사항이 없거니와 오직 수업을 해서 받는 강의료가 수입의 전부이다. 2020년 그나마 여름과 겨울 두 번의 방학 동안은 수업이 전혀 없으니, 일년에 두 번씩은 수입이 전혀 없는 강제 백수인 셈이다. 강의료 역시 시수로 예술강사 제도가 생긴 2000년부터 지금까지 딱 한 번 올랐다고 한다. 그것도 3000원. 20년 동안의 물가상승률만 따져도 3000원보다는 더 될 텐데, 예술강사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리라는 것인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원래는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예술강사 제도가 지금은 되레 일종의 족쇄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창작만 해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니, 학교라는 공교육의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에 창작에 임하라는 취지가 지금은 창작에 몰두할 수도,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전념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위치로 예술강사들을 몰아넣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을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으나, 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견뎌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마다 고충이 담긴 ‘노동일기’로서 응모작 일부를 추가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