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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1호 접종’ 두고 정쟁을 벌이는 나라 / 황보연

등록 2021-02-24 18:33수정 2021-02-25 02:41

황보연ㅣ사회정책부장

26일부터 시작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때아닌 공방이 벌어졌다. 1호 백신 접종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두고서다. 지난 19일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번 접종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이냐고 받아쳤다. 이에 ‘국민은 실험대상이 되어도 되느냐’는 반발 여론이 빗발치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실험대상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22일)이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필요하면’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먼저 백신을 맞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원칙적으로는 요양병원·시설의 입원 환자와 직원, 코로나19 치료 의료진 등 정해둔 순서대로 하자는 입장이다.

각국의 백신 접종 사례를 보면, 1호 접종자에는 나라마다 부여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가장 먼저 백신을 맞은 이는 90살 할머니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 위험을 줄이는 데 주안점을 둔 영국에서는 접종 순위를 정하는 주된 요인이 나이였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요양시설 고령자가 첫번째로 맞았다.

이에 비해 미국의 1호 백신 접종자는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당시 52살)였다. 유행 확산 차단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접종 계획을 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국립 도쿄의료센터 원장이 1호였는데,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차원에서 의료진 접종 뒤 상태를 공개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이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총리와 대통령이 1호 접종자가 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1호는 아니지만 당선자 신분일 때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는 국면에서 지도자가 먼저 나서 백신 접종을 권장한 경우다.

정치권에서 벌어진 1호 공방이 마뜩잖은 것은 접종 우선순위의 타당성을 따지는 대신 백신에 대한 불신만 조장할 우려가 있어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 효능 논란을 빌미로 야당이 공세를 펴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기존 임상시험에서 고령층 표본이 적었을 뿐이며, 안전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입원 예방 효과가 고령층에도 80% 정도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백신이 정쟁의 수단이 되어버리면 결과적으로 접종률을 낮추는 요인이 될 뿐이다. 실제로 독감 백신 상온 노출 사고 이후 빚어진 논란으로, 지난해 독감 무료 백신 접종률은 64%로 한해 전(73.1%)보다 9.1%포인트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백신 접종 시작이 늦었을 뿐 아니라 대규모 유행을 거친 나라에 견줘 항체양성률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11월까지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 속도가 빠른 이스라엘에서도 “백신을 거부하는 ‘콘크리트층’이 20%가량 있어 어느 지점부터는 진척이 잘 안되는 상황”(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 대상자의 약 94%가 접종에 동의했지만, 접종 후순위로 갈수록 동의율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지난 5~7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26.8%는 ‘접종 시기나 순서를 다음으로 미루고 싶다’, 4.9%는 ‘접종을 거절할 것’이라고 답했다.

야당의 소모적인 공세도 문제지만, 정부·여당도 미덥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반드시 1호 접종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이를 “공정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권덕철 복지부 장관)며 여론 눈치보기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고령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미국 임상시험 등 추가 자료가 확보될 때까지 보류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피해간 것”(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이라는 지적을 받은 터다. 게다가 백신 물량 확보와 국내 도입 등을 두고 질병청보다 윗선에서 먼저 발표하는 ‘멀티 보이스’로 혼선을 초래한 전력도 없지 않다. 일관된 메시지와 투명한 정보 공개, 적극적인 위기 소통이 절실해 보인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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