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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하청노동에 비친 후쿠시마 10년 / 안영춘

등록 2021-03-10 15:00수정 2021-03-11 02:48

2013년 도쿄에서 우편집배원으로 정년퇴직한 이케다 미노루는 이듬해 후쿠시마로 갔다. 그곳에서 1년 남짓 도쿄전력의 3차 하청노동자로 후쿠시마 원전 1호기와 주변 지역의 오염 제거 작업에 투입됐다. 43년 집배원 경험으로는 절대 알 수 없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후쿠시마를 떠날 때, 그는 1년 전의 그가 더는 아니었다. 이후 자신이 겪은 일들을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라는 책으로 펴내고, 탈핵 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후쿠시마로 떠나기 전 그의 머릿속은 원전 사고 복구에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과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반반이었다. 그 생각은 현지에서도 절반씩 실현됐다. 후쿠시마를 사람 살 수 있는 곳으로 되돌리는 데 필요하다는 작업을 하긴 했다. 파견회사도 그 일을 시급으로 쳐서 다달이 돈으로 주긴 줬다. 그러나 현장은 과학 대신 주먹구구가 지배했고, 피폭을 무릅쓴 하청노동의 대가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다단계로 떼 갔다.

작업에 투입되기 전 이케다와 동료들이 받은 교육은 반나절이 전부였다. 설령 철저히 교육을 받았더라도 현장에서의 쓸모는 별개였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온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숲과 들과 원전을 제거할 수도 없었다. 제거 작업의 목적은 손 닿는 부분만 수거해 보이지 않게 하는 거나 같았다. 수거의 목적도 흩어져 있던 걸 모아 산처럼 쌓아두기 위한 것일 뿐, 처리 수단이 없기는 사용후핵연료와 다르지 않았다.

현장 어디에서도 도쿄전력 직원은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투명인간’은 그들이 아니라 하청노동자들이었다. “도쿄전력 직원은 현장 작업원 입장에선 구름 위의 신 같은 존재”여서, 그들 눈엔 현장의 실태도 노동자도 보일 리 없었다. 일하다 다치고 숨지는 것도 이들 투명인간이었다. 이케다는 흰색 보호복을 입은 동료들을 “거인에 맞서 싸우는 흰개미”라고 했고, “앞으로 50년간 대체 몇백만명의 작업원이 필요할까” 물었다.

하청노동자가 없으면 원전은 굴릴 수 없을뿐더러 끌 수도 없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전의 변경 불가능한 기본값이다. 도쿄로 돌아온 날 밤, 늙은 하청노동자는 후쿠시마에서 온 전기로 불을 밝힌 화려한 야경에 경악한다. 원전은 공간마저 외주화한다. 서울 야경의 원리가 다르지 않다면, 10주년이 된 후쿠시마 참사는 바다 건너 불구경거리일 수 없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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