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월을 보내다 결국 이것은 아니다, 이러다 내가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처음 두달은 혹여나 감염이라도 되어 학교에 코로나를 전파하는 슈퍼전파자가 될까 봐 무섭기도 하고 그 뒤에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김슬기(가명)ㅣ방과후 강사
창밖의 맑은 가을 하늘이 안방 한쪽으로 햇살을 내리쬐고 있다. 어느덧 집 안에서 책을 읽고 낮의 햇살을 만끽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여유 있는 오전 시간으로 커피를 한잔 내려 향긋한 내음과 바삭한 토스트에 달달한 누텔라크림을 바르고 이른 아침 건강이라도 생각하듯 바나나를 썰어 올린다. 어찌 보면 아주 여유 있는 어느 작가나 부유하여 삶을 여유롭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 같다. 작가나 부유한 자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누군가는 오전의 저 여유를 부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일을 할 수 없어 그저 기다림을 변화시켜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어느 노동자의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여유다. 차가운 계절을 지나 한해를 잘 버텨온 내가 참 대견하다.
나는 방과후 강사다. 소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한다. 누군가는 “선생님이네, 멋지다!”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게 뭐야? 선생님 같은 건가?”라며 이런 직업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직업군이다.
이제 나는 20년째 존재하며 학교 울타리 안에서 일해온 방과후 강사, 즉 비정규직 프리랜서 강사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 10년차로 나는 방과후 강사 중 벌이가 꽤 괜찮은 상위 5% 내의 우수 강사라고 자부해왔다. 지난해 코로나로 나의 현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전까지 말이다.
방과후 강사도 개인이나 업체 등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업체 소속으로 계속 일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면서 내가 업체 소속의 강사이지만 프리랜서라는 계약상의 이유로 어떤 보호도 조치도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어느 누구, 어느 기관한테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수업이 없으면 수강료도 없으니 당연하게 월급도 없다는 무언의 통보. 그도 그럴 것이 전년도 여름방학에도 학교 공사로 인해서 갑자기 방과후 수업이 중지되었다. 회사에 알린 후 대책을 강구하였으나 수업을 쉬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당연히 기본급이라는 것도 없는…. 나는 그 여름 긴 한달간의 휴가를 얻었지만 수입은 0원이었다. 휴가비? 하하! 10년이란 시간 동안 일하면서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다. 9년을 일하며 평일에 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어디 가족과 함께 긴 여행을 꿈꾸지도 못했다. 쉬려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그에게 임금을 줘야 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던 마음에 무급이라도 한달만 쉬었으면 좋겠다며 농담하던 나를 원망한다. 그리 부르짖었던 휴가를 타의로 얻었고 무급으로 나만의 휴식을 가졌다. 그럼에도 나는 프리랜서니까 이게 당연한 거야 하며 한심하게 나 자신을 위로했다.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을 그만둘 게 아니니 그냥 한달 쉬어간다 생각하자며 다독였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해 코로나에도 적용되었다. 당연하다며 3월, 4월을 보내다 결국 이것은 아니다, 이러다 내가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처음 두달은 혹여나 감염이라도 되어 학교에 코로나를 전파하는 슈퍼전파자가 될까 봐 무섭기도 하고 그 뒤에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달 동안 상실감,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들에 사로잡혀서 이러다가 내가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구직란을 뒤지기 시작했다. 너무 웃픈 건 다시 학교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혹여라도 갑자기 학교에서 수업이 다시 시작되면 갈 수 있도록 오전 일찍이나 저녁에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는 것이었다. 결국 집에서도 가까워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고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서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동네 작은 술집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아르바이트 처지이다 보니 그저 사장님의 눈치를 보았다. 가게는 코로나로 손님이 없어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반이었다. 뭐든 일하러 나왔지만 걱정이 또 반이라 비닐 라텍스 장갑까지 사비로 사서 껴가며 일했다. 하지만 마스크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장님이 쓰질 않았다. 한달 반 정도 하고 도저히 아니다 싶어 그만두었다. 그 뒤에 급여를 정산하러 가보니 사장의 딸이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그 딸은 당연한 듯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너무나도 씁쓸한 경험이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중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을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으나, 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견뎌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마다 고충이 담긴 ‘노동일기’로서 응모작 일부를 추가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