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희 ㅣ 문화팀장
“이미 사망한 사람도 구독자 명단에서 삭제하지 말라는 본사 지시가 있었다”, “미판매분은 판촉용으로 뿌린 뒤 유료부수로 집계하도록 했다.”
2004년 미국 신문업계는 ‘구독자 수를 조작해 부수를 실제보다 과장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유력 지역일간지 <댈러스 모닝뉴스>는 당시 “2003년 4~10월까지 평균 구독자 수를 일요판은 전체 부수의 5%, 평일판은 1.5% 부당하게 늘려 발표했다”고 인정했다. 일요판 구독자가 78만5876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론 74만6500명이라는 것이었다. <댈러스 모닝뉴스>는 광고주와 독자에게 사과했다. 더불어 광고주들에게 2300만달러(276억원)를 되돌려주고, 정확한 실태조사 비용으로 300만달러(36억원)를 추가 책정했다. <뉴스데이>와 <시카고 선 타임스> 등 5개 신문도 사과문을 싣고 수백억원대의 보상책을 내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신문과방송>(2004년 10월호)에도 소개됐던 이 사건은 최근 한국 신문업계 상황과 오버랩된다. 지난해 11월 한국ABC협회(부수공사기구) 내부고발자가 진정서를 넣으면서 불거진 ‘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조선일보>와 협회를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9명이 정부의 사무검사 결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방안 발표를 촉구하고 나섰다.
17년의 시간 차를 두고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진 유사한 사건에는, 그러나 큰 차이점도 있다. ‘겨우’ 몇만부 차이에 불과했던 미국 신문들의 부풀리기와 달리 한국은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발행 부수가 121만2208부(2019년)라는 <조선일보>의 경우, 유가율이 95.94%(116만2953부)로 공시됐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현장조사 결과, <조선일보>는 보고 부수와 실사 부수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평균 성실률’이 49.8%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지국에 한정된 조사지만, 최악의 경우 <조선일보>의 실제 유료부수가 60만부 이하일 수 있단 뜻이다. <한겨레>를 포함한 주요 일간지의 유가율 역시 80~90%대로 공시된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BC협회 인증이 기업과 정부 광고단가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기 수준”이라는 비난이 과하다고 할 수 있을까. “광고단가 기준 60만부 이상은 A군, 20만부 이하~5만부 이상은 B군에 포함돼 실제 과도한 이득을 챙긴 건 조중동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와 광고주를 넘어 국민을 기만했다는 점에서 어떤 신문도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
사실 ABC협회의 신뢰성 문제는 계속해서 불거져왔다. 그럼에도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부수 검증 기준을 낮추고 협회에 가입한 신문에만 정부 광고를 집행하도록 법령을 바꾸는 초강수를 두며 인증 참여를 강제했다. “자전거·상품권이 난무하는 신문시장에서 부수 부풀리기가 자행될 것”, “시장지배적 사업자만 강화시켜 여론의 다양성을 위축시킬 것”(<한겨레> 2009년 5월8일치 사설)이란 반발은 무시됐다.
종이신문은 사양길에 들어선 지 이미 오래다. 2011년 24.8%였던 정기구독률은 2020년 6.3%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신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종이신문·스마트폰·피시 등 다양한 수단으로 신문기사를 읽는 결합열독률은 2017년 88.5%에서 2020년 89.2%로 오히려 높아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종이신문 부수에 매달리지 말고 디지털 페이지뷰까지 통합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17년 전 <댈러스 모닝뉴스>는 부풀리기를 인정한 뒤 사과하고 사장까지 나서 광고주 2000여명에게 일일이 전화해 보상을 약속했다. 미국ABC협회도 벌금 강화 등 대책을 신속하게 발표했다. 한국 신문업계에 당장 이런 조처를 기대하긴 무리일 터. 가장 단순한 질문에 답을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보의 ‘진짜’ 유료부수는 몇 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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