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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LH 이해충돌방지, 이제 부산 떠는 입법자 / 김만권

등록 2021-03-14 15:01수정 2021-03-15 02:41

김만권 ㅣ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번째 집이다.” 미국의 교육자인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말이다. 파커 J. 파머가 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여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이 마음의 실체는 뭘까? 두 사람의 글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결국 그 마음의 실체는 신뢰다. 그 신뢰가 산산조각 날 때 파머의 말처럼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는 비통함에 빠져든다. 그럼 왜 신뢰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마음의 첫번째 집이 되는 걸까?

당대의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시민정부다. 보통사람들은 대표자를 선출하며 권력을 위임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력은 보잘것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권력이 모이면 큰 권력이 된다. 평범한 우리들은 이렇게 모은 권력을 대표자들에게 위임한다. 권력을 위임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동료시민들을 신뢰하는 사람들이고, 대표자가 그 동료시민들 사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로크부터 시작되는 시민정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바로 이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 부른다.

민주주의는 이 신뢰를 지키는 최선의 방식으로 권력의 ‘투명화’를 택했다. 전통적으로 권력은 비밀스러울 때 더 강력하게 작동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된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는 경호원인 기게스에게 자신의 가장 은밀한 곳, 자신의 침실을 훔쳐보게 했다가 왕비의 분노를 사 암살당하며 권력을 잃는다. 이 일화는 권력이 ‘은밀함’이란 속성을 잃을 때 얼마나 무력한지 들려준다. 이처럼 권력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한다는 건 그만큼 권력을 제약한다. 권력의 입장에선 속상할지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에선 이런 투명성이 평범한 사람들과 대표자들 간에 신뢰를 만든다.

이런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주의는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중 하나가 ‘이해충돌방지’다. ‘이해충돌’은 간단히 말해 공무를 담당한 자가 그 공무를 통해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한마디로 공익을 가장해 자신의 사익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다. ‘이해충돌방지’는 공직자들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직무를 회피하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한다. 특히 민주주의가 ‘이해충돌방지’를 위해 집중해온 공직자들은 주로 입법자들인데, 이들이 법을 만들어 이익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땅투기 사건으로 공분을 사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은, 단지 만들어진 법에 따라 행정을 하는 공기업 직원들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이들은 대표자들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 옆에서 자신도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힘없는 동료시민인 양 행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에이치 직원들이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입법자들의 책임이 훨씬 크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이해충돌방지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이미 10년 전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2013년 국회에 제출된 ‘김영란법’의 원래 이름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법안’이었다. 하지만 ‘이해충돌이 예상될 경우 해당 직무를 회피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두면 국회의원과 중앙부처 공무원 등의 업무 수행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핑계 속에 부정청탁 부분만 남아 통과되었다. 그나마 부정청탁 부분이라도 살아남았던 건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다. 해양수산부에서 퇴직한 공직자들이 해양수산부의 위탁업체에 취업해 생겨난 감독 부실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공직자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통함에 빠진 뒤에야 ‘부정청탁법’이 통과된 셈이다. 이번 엘에이치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또다시 신뢰가 조각나고 평범한 사람들이 비통함에 빠져들고서야 뒤늦게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돌아보면, 수많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해충돌방지’가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국회의원과 중앙부처 공무원의 업무 수행이 마비될 수 있다는 핑계로 막혔던 것일까? ‘마음이 민주주의의 집’이라고 말한 윌리엄스의 질문을 고쳐 입법자들에게 묻는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입법자들을 신뢰해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가?’ 왜 늘 비통함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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