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후긴급행동과 부산청년기후용사대의 청년들이 9일 오전 서울 국회 앞 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성환 찬성, 양이원영 기권, 이소영 불참…. 저 세 명의 국회의원이 가덕도 공항에 몰아준 표의 뒷맛이 아직도 쓰리다. 최대 책임은 최고 책임자들에게 있겠지만 그들에겐 애초에 기대가 없었다. 허접한 그린뉴딜과 공허한 넷제로 선언만 발표한 대통령, 흑산도 공항을 밀어온 여당 대표는 처음부터 투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환경 전문’ 중진, 환경단체 및 환경 법률가 출신으로 이뤄진 소위 ‘그린뉴딜팀’ 의원들에겐,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어보고 싶었나 보다. 법안 통과는 예상했지만 저항도 안 할 줄은 몰랐던 나의 순진함!
저항은커녕 김성환은 뻔뻔한 궤변을 펼쳤다. 항공 온실가스는 별게 아니라는 망발과 10년 후에 수소 비행기가 상용화된다는 공상을 동원해. (여기서 가덕도 공항 특별법의 문제를 논하진 않겠다. 많은 글이 나왔고, 기후 전문가가 아니어도 탄소중립과 신공항 건설의 모순은 보일 테니.) 이 법의 통과를 위한 결의대회에 합세한 이소영과 “기후위기를 말할 이가 21대 국회에 없을 거란 위기감에 비하면 위성정당 논란은 안 중요하다”며 정계 진출을 합리화했던 양이원영은 비겁한 회피를 택했다. 그레타 툰베리가 말하던 ‘입으로만 위기를 떠드는 정치인’이 당신들인가?
위기가 아닐 때는 가짜를 못 본 척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유엔에서도 퇴짜 맞았고, 위기 대응은 이미 지체된 지 오래다. 확실히 도움되는 것들만 추려 숨가쁘게 추진해도 부족할 만큼 탄소중립은 어렵고 시급하다. 이런 판국에 가짜 녹색들의 동조하에 전속력 역주행이라니 암담할 뿐이다. 벌써부터 다른 지자체들의 신공항 건설 의지가 들썩인다.
최근 가짜와 왜곡을 처벌하는 입법 활동이 눈에 띄는데, ‘그린 워싱’(친환경을 표방해 이익을 취하나 실제 행동은 거리가 먼 일종의 세탁술) 처벌이 더 급하지 않을까? 가령 5·18 정신을 부정하는 이를 걸러낼 세력과 자정 능력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녹색 거짓말과 왜곡은 아무리 판을 쳐도 제재 장치가 없다. (인증제도론 어림없다. 인증기관부터 신뢰하기 힘든 상황이니!)
물론 이런 법은 발의조차 안 될 것이다. ‘그린의 진위를 가를 기준이 뭐냐? 누가 판단하나? 흑백논리 아닌가?’ 등의 문제 때문은 아니다. 공감 갈 만한 기준을 정하고 공정한 집행도 할 수 있다. 어렵지만 가능하다. 문제는 그린 왜곡이 정치·경제·사회 전 영역에 만연한 현실이다. 그린 워싱의 원조 격인 이명박의 녹색성장 정책부터 시작해 이에스지(ESG) 경영을 외치면서 환경·사회적 비용을 만만한 곳들(가령 개도국)에 외부화해온 대기업들은 물론,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십수년간 바다와 대기를 오염시키는 크루즈 선상의 ‘친환경’ 투어를 팔아온 국내 대표격 환경단체까지…. 일일이 처벌했다간 과잉범죄화 현상이 일어날 만큼 많다. 바로 이것이 그린 워싱의 치명적 폐해다. 가짜들이 자꾸 회색을 녹색이라 속이면 사회 전체가 하강한 기준에 적응해버린다. 그리하여 ‘현실은 원래 이 수준’이라는 허무주의가 상식이 되고, 변화에 필수적인 진짜 녹색 접근들은 극단적 이상주의로 치부되고 배제된다.
무결점의 그린을 찾자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없다. 무늬로 표방하는 녹색 수사의 정도와 그걸로 챙긴 반사이익 대비 실제 결과의 차이가 현격한 것만이라도 거르자는 거다. 적어도 환경 의원 간판을 걸고 저따위 표는 못 던지게, 석탄발전소와 공항을 지으면서 탄소중립 운운하지는 못하도록 말이다. 이번 신공항 사태와 그린뉴딜파의 배신을 보며 다시금 분명해진다.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는 가짜 녹색 권위에 ‘불복종’하는 우리 일반인들이다. 우리가 자율적 시민운동의 압박력을 높이는 길뿐이다.
작가·시셰퍼드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