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훈 ㅣ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눈을 감고 한 사람의 무슬림(이슬람 신자)을 떠올려보자. 많은 한국인들은 아마도 수염이 북슬북슬하고 눈빛이 형형한 ‘아랍풍의 남성’을 상상할 것이다. 그는 터번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AK-47 소총이나 유탄발사기 같은 것을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그의 가족을 그려보자. 혹시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러 명의 아내들이 보이는가?
그러나 널리 퍼진 이런 이미지는 현대 무슬림을 대표하지 못한다. 오늘날 세계 이슬람 인구의 절반 이상은 중동 지역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다. 터번은 덥고 건조한 지역에 적합해 모든 지역의 무슬림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지는 않는다. <쿠란>이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일부다처제 문화들에 비하면 제한이 상당히 많다. 이슬람이 다수인 현대 국가 중에서도 중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나라가 상당수이고, 불교나 기독교가 다수인 나라들 가운데에도 법적, 문화적으로 일부다처제가 허용된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이슬람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신자 수가 많은 종교다. 조사 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지구인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이 무슬림이다. 당연히 이 종교는 민족적, 지역적, 교의적으로 대단히 다양하다. 여성들의 전통 의상만 해도 머리를 덮는 히잡, 전신을 감싸는 차도르나 부르카, 얼굴을 가리는 니캅 등 숱한 종류가 있다. 오늘날에는 머리를 덮지 않거나, 패션이나 문화적 표현으로만 히잡을 착용하는 무슬림 여성들도 흔하다.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을 하는 유목민들도 있고, 슈트나 티셔츠, 청바지 같은 서구화된 옷을 입고 다니며 햄버거 패티에 돼지고기 성분이 약간 들어가는 것 정도는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로 세속화된 도시인들도 있다. 그러니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곧바로 ‘테러리스트’를 연상하는 것은, 기독교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국의 케이케이케이(KKK)단이나 한국의 태극기 부대를 떠올리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다.
대구의 주택가에 이슬람 사원 건립이 진행되다가 주민들의 항의로 공사가 중지되는 일이 일어났다. 주민들은 소음과 악취,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지역의 ‘이슬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는 사찰의 새벽예불 종소리나 교회의 철야예배에서 흘러나오는 통성기도와 찬양 소리를 관용하는 다종교 사회에 살고 있다. 세계 어디에 가나 김치를 먹는 사람들이 아직 풍기지도 않는 ‘냄새’를 우려하는 것도 곤란하다. 얼핏 이해가 쉽지 않은 ‘재산권 침해’와 ‘이슬람화’는 사실 한 세트다. 낯선 외국인들이 오가면 행여 집값이나 임대료가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확신하건대 그들은 영어예배를 하는 교회가 들어서 ‘백인’들의 출입이 잦아진다고 해서 지역이 ‘기독교화’해 자신들의 재산권이 침해될 거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은 근래에 와서 한국에 갑자기 ‘침입’한 종교가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에 파병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터키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곤 한다. 바로 그 터키군이 전후 1950년대 고아원과 학교를 짓고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이 현대 한국 이슬람의 출발이었다. 오늘날 한국에는 이태원의 서울중앙성원을 비롯해 17개의 모스크가 전국에 분포해 있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의하면, 이주민을 제외한 한국인 무슬림 수는 2018년 기준으로 6만명 정도로, 이는 증산계 종교들의 인구를 합친 수, 혹은 천도교 인구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유학, 취업, 결혼, 관광 등으로 이주, 체류하는 무슬림은 그보다 훨씬 많다. 이슬람은 이미 한국의 주요 종교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인구조사에는 아직 이슬람교 항목이 없다. 무슬림 인구는 이상할 정도로 많이 책정된 ‘기타 종교’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엄연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 종교의 존재조차 부정한 채 혐오의 사회를 벗어나는 것은 무리다. 이슬람에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적으로도, 그리고 정상국가로서도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