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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윤석열과 한강식 / 김경욱

등록 2021-03-16 16:15수정 2021-04-12 14:39

영화 더킹 정우성
영화 더킹 정우성

김경욱 ㅣ 법조팀장

그는 검찰 내 1%에 속하는 ‘특수통’ 검사였다. “(전 정권) 청산의 주역, (새) 정부의 공헌자. 수사하는 건마다 굵직하게 대박을 쳤다.” 그가 조사하는 대상은 스케일이 달랐다. 이름 없이, 빛없이 “하루에 서른 건이 넘는 사건을 정리하”며, 이른바 ‘잡범’들과 씨름하는 99%의 검사들과 달리, 그가 이끄는 검사들은 정치인, 재벌 총수, 고위 공직자 등을 “기소하며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오해 마시라. 2017년 개봉한 영화 <더 킹>에서 권력을 잡아 폼나게 살고 싶은, 99% 검사 박태수(조인성)가 롤모델로 삼은 한강식(정우성) 이야기다. 검찰 권력의 정점에 있는 한강식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대한민국 권력을 설계해온 ‘정치 검사’다. 영화는 불의와 타협한 뒤 한강식 라인에 합류하게 된 박태수가 권력을 누리다가 몰락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한국 검찰 권력을 ‘영화적’으로 그려낸 이 블랙코미디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지난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지켜보면서다. 지난 세월 한국 사회의 ‘정치 검사’들은 한강식 부류의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전 정권 인사나 야권 인사를 겨눈 표적수사·먼지떨이 수사를 벌이면서도, 여권 인사가 관련됐거나 정권에 부담되는 수사는 뭉개는 방식으로 집권 세력에 충성을 다한 검사들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 검사’의 상징에 균열을 부른 것이 바로 윤 전 총장의 사퇴였다. 그는 이날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로 사실상의 정계진출을 선언했다. ‘정의’와 ‘공정’을 내걸고 정부와 여당에 맞서며 몸값을 높이다가 여차하면 대선으로 직행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한강식을 롤모델로 삼은 박태수처럼, 현실에서 윤석열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 검사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물론, 윤 전 총장의 사퇴를 둘러싼 청와대와 여권의 ‘원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높은 시기에 개혁과 맞지 않는 ‘검찰주의자’ 윤 전 총장을 찍어 발탁하고, 이른바 ‘추-윤 갈등’ 국면에서 그의 존재감과 맷집을 키워준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였다.

그럼에도 이번 사퇴에 따른 윤 전 총장의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강조해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란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하려고 재임 기간 검찰을 움직인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몰고 온 장본인은 다름 아닌 윤 전 총장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시작으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수사,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 등 그가 검찰권을 행사한 현 정부 관련 수사의 진정성과 공정성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 “그 직무를 수행할 때, (중략)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검찰청법 조항을 붙들고 그의 선의에 기대를 거는 것은 맹목적 추종일 뿐이다. 앞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후배 검사들이 마주해야 할 꼬부장한 시선과 ‘정치 검사’라는 프레임을 무슨 수로 떨칠 수 있겠는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라는 가치에서 봤을 때, ‘한강식’이나 ‘윤석열’은 큰 차이가 없다. 검찰이 정권의 보위를 위해 무리한 표적수사를 벌인 것만큼, 검찰총장이 자기 정치를 위해 특정 세력에 무리하게 맞선 것 또한 이들 가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을 넘어, 권력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그 조직의 정점에 있던 이가 사퇴와 동시에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검찰이 누군가의 힘을 빌릴 것도 없이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 스스로 대한민국 권력을 설계하는 형국이다. 영화는 왕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검사들을 통해 “당신(국민)이 이 나라의 왕”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검찰공화국이다.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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