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오른쪽)과 앨런 김. 판씨네마 제공
조문영ㅣ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미나리>를 봤다. 영화가 시종일관 잔잔해서 처음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는 장면이 늘었다. “언니, Minari 보셨나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촌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언니”라 부르지만, 나의 어머니와 같은 나이다. 1970년대 말 미국에 이민을 떠났다. <미나리>의 가족이 허허벌판의 바퀴 달린 집을 바라보던 장면에서 오래전 언니가 보내준 사진이 떠올랐다. 나의 “미국 친척”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에 산다며 우쭐댔던 기억이 난다. 용산의 군부대에서 일하던 언니가 아버지 나이뻘인 미군을 만나 결혼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남편만 믿고 황량한 시골로 향했던 모니카처럼, 군인인 남편을 따라 동양인이 드문 곳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동안 언니는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다행히 사촌 언니는 남편의 퇴역 후 캘리포니아에 정착하면서 한국에 사는 동생들을 미국으로 불러모았다. 다들 억척스럽게 일하고, 이민자 사회에서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에 똘똘 뭉쳐 사업을 도모했다. 몇 년이 지나 고모 내외도 미국으로 떠났다. <미나리>의 할머니 순자처럼,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손주를 돌봐야 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언어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새 출발을 (당)한지라, 고모 내외에게 가족은 소중하고 절박했다. 캘리포니아로 유학 온 나도 당신들이 챙겨야 할 가족이 되었다.
백발의 고모부는 나를 픽업하러 기차역에 늘 먼저 나와 계셨는데, 변명하자면 고모부에게 운전만큼 익숙한 것도 없었다. 해방 전 중국에서 일본군으로 트럭을 운전했고, 국군 운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후에는 택시 운전을 했고, 이민 와서는 한인교회의 봉고차를 몰았다. 알츠하이머를 앓던 고모를 옆좌석에 기어코 태워 교회, 마트, 호수로 나들이했고, 집에 돌아와선 젊은 시절 고모의 애창곡을 불렀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고모의 “당신”이 생애 대부분을 함께한 자신이 아닌 첫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으셨다. 병이 깊어져 표정을 잃어가던 고모가 갑자기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기라도 하면 고모부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한때는 ‘아시아퍼시픽 운전사’ 고모부의 삶을 중심으로 냉전과 식민의 미시사를 재구성해보고 싶다는 연구 욕심을 지폈지만, 내 분석의 언어가 이민자 가족의 오랜 노고를 이해하기엔 너무 투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접었다.
사촌들에 따르면 열아홉에 시작한 고모부의 운전은 프리웨이 한복판에서 결국 끝장이 났다. 차가 갑자기 멈췄는데, 걸음도 불편하고 영어도 안 통하는 노인이 기름통을 들고 주유소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한 백인 남성이 고모부를 안전하게 경찰서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어린 데이빗의 친구 존처럼, 제이콥의 동료 폴처럼, 누군가는 낯선 땅에서 경계심을 거두기 힘들었을 이민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가족’에 관해 온갖 막장 이야기를 전하던 언론이 <미나리>에 대해 호평을 쏟아내면서 보편과 생명의 가치에 호소하는 풍경이 낯설긴 하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존속살인 등 세간의 뉴스를 보자면 가족만큼 끔찍한 족쇄가 있을까 싶다. 성적 불평등을 고착시켜온 오랜 역사를 곱씹자면, 가족은 사라지거나,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굴레를 벗고 거듭나거나 둘 중 하나다. 영화에서도 제이콥은 ‘장남의 의무’를 다하느라, “애들도 한번쯤은 아빠가 뭘 해내는 걸 봐야” 한다며 무리하다 가족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던가.
하지만 지구상 대다수는 혈연 가족으로 살아가고, 이 구심성은 미래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가족 비판이 더 호소력을 가지려면 ‘억압’이란 진단과 ‘폐기처분’이란 권고를 넘어 그 끈적끈적한 관계의 다발을 두텁게 읽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겨울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를, 그 죽음의 무게를, 그가 살고 견디고 만들어온 가족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늠할 수 있을까?
고모는 몇 년 전 평온히 눈을 감으셨지만, 고모부는 올해 98세가 되었고, 백신도 이미 맞으셨다고 한다. 나의 호들갑 때문에 사촌들이 근처의 <미나리> 상영관을 찾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들도 나처럼 “미나리는 원더풀”을 흥얼거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