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자리가 크게 감소한 건 전세계적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LO·아이엘오)에 따르면 2020년에 팬데믹으로 사라진 정규직 일자리만 2억5500만개다. 이 중에선 서비스 분야가 단연 감소폭이 제일 컸다. 미국에선 팬데믹 직후인 2020년 4월, 연봉 3만달러(약 3400만원) 이하의 저임금 일자리는 37% 감소한 반면, 8만5천달러(약 9600만원) 이상의 고임금 일자리는 1%만 줄었다. 같은 시점 연봉 3만~4만9천달러 사이는 18% 감소, 5만에서 8만5천까지는 9% 감소한 걸 보면 확실히 임금 수준과 일자리 손실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이후 일자리 감소폭은 줄어들었지만, 3만 이하는 올해 1월 기준으로 13% 감소를 기록하고, 8만5천 이상은 변함없이 1% 감소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8만5천달러 이상은 일자리가 작년 6월에는 3% 증가, 12월에도 1% 증가하기도 했다. 팬데믹 기간 중 유일하게 일자리 증가를 경험한 건 고임금 일자리다.
임금에 따라서만 일자리 감소폭의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니다. 재택근무가 원활한가 그렇지 않은가도 차이를 만들었다. 재택근무가 어려운 산업의 일자리는 2020년 4월 22.1% 감소한 반면, 재택근무가 원활한 산업은 5.6% 감소에 그쳤다. 이 둘의 일자리 손실은 4배 차이다. 재택근무가 원활한 분야의 일자리는 올 2월을 기준으로 2.9%만 줄어 감소폭을 크게 줄였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건 지식노동이라는 얘기다. 이런 산업은 글로벌 아이티(IT·정보기술)나 대기업이 포진된 영역일 수 있고,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다. 재택근무가 불가한 분야는 서비스직, 판매직, 생산직이다. 이들은 자동화의 대체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팬데믹이 끝나도 일자리는 줄어든다. 전문가들이 꼽은 향후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종에서도 영업·판매직, 서비스직, 금융·보험직, 제조·생산직, 운전·운송직이 상위권에 포진된 건 우연이 아니다. 사라질 업종의 특징이 원격·재택근무는 어렵고, 자동화는 가속화된다는 점이다.
얼마 전 <티브이엔>(tvN)에서 ‘박성실씨의 사차산업혁명’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에이아이(AI) 상담원 도입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콜센터 상담원의 생존기를 다룬 내용인데, 결론적으로 모든 콜센터 상담원은 일자리를 잃는다. 극 중 주인공의 남편은 트럭 운전기사였는데, 그도 자율주행차에 의해 일자리를 잃는다. 성실하게 일해왔지만 결국 산업적 진화에 따른 일자리 구조 변화 앞에 무너지고, 드라마는 산업혁명을 4차가 아닌 ‘死’(죽을 사)차로 그려냈다. 에스에프(SF)가 아니라 일상 드라마 소재로 에이아이에 의한 일자리 대체가 다뤄지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로봇과 에이아이 때문에 미래에 일자리가 줄어들 거란 예측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되었다. 반면 요즘 기업들은 우수한 프로그래머를 구하는 게 최고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프로그래머 인재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업종을 막론하고 모두 디지털로 전환해야 살아남다 보니 우수 프로그래머는 필수다. 빅테크뿐 아니라 유명 스타트업에서도 입사 시 억대 연봉 외에도 보너스나 스톡옵션으로 1억원을 별도로 내거는 경우가 많고, 기존 프로그래머를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직원들의 연봉을 수천만원씩 올리는 곳도 있다. 한쪽에선 일자리가 사라져 생존 위기지만, 다른 한쪽에선 품귀 현상으로 연봉이 치솟는 상황이다.
이건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 그러게 콜센터 가지 말고 프로그래머가 되지 그랬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산업구조 변화, 일자리 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문제다. 부동산이 지금 발등의 불이면, 일자리 구조 변화는 그다음 불이다. 늘 그랬듯이 위기는 아래로부터 온다. 무능한 정치가 삽질하는 동안에도 위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