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일본의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축구 한·일전은 단순히 스포츠 경기 중 하나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일본 도쿄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부터 시작된 두 나라 축구 대결의 역사가 방증이다. 당시 1승1무를 기록한 한국은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땄는데, 선수들이 ‘현해탄에 빠진다는 각오로 뛰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이런 레토릭은 축구 종목에서 벌어지는 한·일전의 긴장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 승리 때는 “후지산이 무너진다”라는 방송 캐스터의 레토릭이 회자된 적이 있다. 또 미디어에서는 이 대결을 ‘도쿄대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이 선수 시절인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국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에 패한 뒤, “앞으로 일본에 지면 축구화를 벗겠다”라고 한 말도 유명하다. 탈락 위기에 몰렸던 한국은 이라크가 일본과 비기는 ‘도하의 기적’으로 기사회생했고, 일본은 ‘도하의 충격’에 절망했다.
축구 한·일전에서는 팬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그동안 다양한 레토릭이 생산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시학>(천병희 옮김)에서 수사학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권하거나 만류하는 ‘정치 연설’, 상대를 찬양하는 ‘과시 연설’,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기 위한 ‘법정 연설’의 3가지로 분류했다. 듣고 보는 대중이나 판관을 전제로 한 수사의 기술은 감정과 논리, 증거 등으로 설득력을 높이거나 때에 따라 속이기도 한다. 압축적인 말이 주는 파급력은 크다.
이번 한·일전은 도쿄올림픽(7.23~8.8) 개막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일본 내 성화 봉송이 이뤄지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올림픽 개최 분위기 조성에 맞춤하게 한·일전 축구 이벤트가 짜인 셈이다.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라 결과에 대한 주목도가 높지만, 이번 한·일전에서는 승패를 초월해 두 나라 축구 발전뿐 아니라 관계 개선을 위한 미래 지향적 레토릭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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