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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전환해야 하는 건 당신입니다

등록 2021-03-25 16:12수정 2021-03-26 02:41

2016년 6월 서울에서 진행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인 ‘성소수자 부모모임’ 회원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성소수자가 행복할 권리! 당신이 행복할 권리와 같습니다!’, ‘차별은 나빠요! 혐오를 멈춰요!’ 등의 문구가 씌어진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티재 제공
2016년 6월 서울에서 진행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인 ‘성소수자 부모모임’ 회원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성소수자가 행복할 권리! 당신이 행복할 권리와 같습니다!’, ‘차별은 나빠요! 혐오를 멈춰요!’ 등의 문구가 씌어진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티재 제공

한채윤ㅣ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정신의학자인 앤드루 솔로몬의 뛰어난 저작 중에 <부모와 다른 아이들>이란 책이 있다. 신동, 청각장애, 다운증후군, 자폐증 등 자신과 다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지를 탐구하는 이 책엔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도 꽤 두꺼운 분량으로 실려 있다. 그중에는 열다섯살 자녀를 둔 아버지가 ‘트랜스 청소년 가족 모임’을 방문해서 상담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자녀가 아직 어린데 나중에 커서 마음을 바꾸면 어떻게 할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모임의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두살 때 기저귀갈이대에서 자신이 여자라고 말했다고 방금 이야기하셨잖아요. 그리고 그 생각은 13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고요. 당신은 미래의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어요. 아이와 오늘 일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지금 당장요.”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으면 부모들은 어른으로서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기에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가지 사실을 깜박 잊는다. 지금 자신이 유예시키고 있는 오늘이 자녀에겐 이미 오래전부터 혼자 감당해온 미래였음을. 자녀의 말을 의심하는 건 신중한 것이 아니라 부질없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였음을.

예를 들어, 집에서 딸이라고 불리고 호적에 여자로 등록되어 있는 여덟살의 아동을 떠올려보자. 그 아이가 만약 “저는 남자예요”라고 말하면 어떨까. 사람들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여덟살은 너무 어린 나이고 아직 자신을 정확히 알기엔 미숙하다고 의심할 것이다. 착각하게 된 다른 문제가 있을 거라며 걱정한다. 그런데 만약 그 아동이 “저는 여자예요”라고 말했다면 어떤가. ‘너는 아직 자신의 성별에 확신을 갖기엔 어린 나이란다. 다시 생각해보렴’이라고 야단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여덟살쯤 되면 자신의 성별을 또박또박 말할 때라며 당연하게 여긴다. 결국 중요한 건 처음부터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성별대로, 내가 기대하고 있는 대로 말하는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뿐이다.

흔히 트랜스젠더를 두고 성을 ‘전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입장에서는 자신의 그 무엇도 전환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순수하게 자기를 속이지 않고, 자신의 성별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두살 때부터, 여덟살 때부터 자신의 성별이 무엇인지를 본인은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열살 때까지, 스무살 때까지, 서른살이 될 때까지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의 성별에 대한 당신들의 인식을 바꾸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다. 성공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 이웃과 직장 동료들의 인식이니까.

인간의 성별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자. 의사가 신생아의 외음부를 흘낏 보고 선언한 성별, 국가에서 지정한 주민등록상의 성별은 모두 태어난 뒤에 타인에 의해 부여된 것이다. 태어날 때 가진 고유한 성별은 자라면서 나만의 언어와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어떤 이들은 트랜스젠더를 두고 자기 마음대로 성을 바꾼다며 힐난하지만, 오히려 다른 이의 성별을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고 예단하는 일을 더 익숙하게 저지르는 건 누구인가.

앞서 소개한 책에는 세살 때부터 치마를 입지 않겠다던 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어하던 어머니의 사례도 나온다. 오랜 상담 과정에서 마침내 자녀를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받아들인 날을 어머니는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우울한 딸과 함께 들어갔다가 행복한 아들과 함께 나왔습니다.” 우리는 더 행복하게 서로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다.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전환을 한다면 말이다. 마침 다가오는 3월31일은 전세계적으로 함께 기념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다. 무엇을 전환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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