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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원래 어디서 왔어? / 이나연

등록 2021-03-28 12:03수정 2021-03-29 02:09

이나연 ㅣ 제주도립미술관장

뉴욕은 전세계 거의 모든 인종과 성별이 모여 멜팅(melting·용해)된 냄비(pot)로 유명하다. 신대륙에서도 대도시인 장소의 특성상 “원래”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 사귈 때 스몰토크의 시작을 여는 문장이 “넌 원래 어디서 왔어?”(Where are you originally from?)일 때가 있다. 내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대표적으로는 한국, 구체적으로는 남한, 특별히 소개하고 싶으면 제주라는 섬에서 왔다고 짤막하게 말하곤 했다. 외모가 아시안이기 때문에 더 구체적인 혈통까진 말하지 않는데,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들이 문화적으로 달라서 흥미롭다. 어떤 식이냐면, 캐나다에서 온 친구는 아버지가 오스트리아인이고 어머니가 프랑스인인데, 캐나다 퀘벡에서 살다가 공부하러 뉴욕에 왔다는 거다. 뉴욕의 흑인지구인 브롱크스에 사는 친구는 증조부 때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미국 중서부로 이주해서는 조부 때 브롱크스에 정착했고, 부모님은 곧 할렘으로 이사 가는 게 꿈이고, 본인은 브루클린에 독립해서 산다는 미국사를 읊어준다. 나도 그에 화답해서 나는 극동아시아에 있는 반도인 대한민국에서 왔는데, 알다시피 거긴 남북으로 나뉘어 있고, 나는 남한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제주라는 섬에서 태어났다가 공부하려고 도시인 서울로 진학했다가 지금은 뉴욕에 와 있지, 정도의 오리지널리 프롬에 대해 정성을 들여 설명하게 된다.

왜 갑자기 오리지널리 프롬인고 하니,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유난히 어디 출신인가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 제주에서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데, 제주 출신이라고 말하면 뭔가 어색하고, 구체적인 진짜 출생지를 말해야 한다. 이를테면 서귀포시 호근동같이. 호적지는 호근동 어디쯤이고 유년기는 남성마을에서 보냈고, 그다음에 학교를 다니러 제주시로 이사 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뉴욕에서 자연스럽게 말하던 오리지널리 프롬이 생각났다. 돋보기로 점점 더 확대해 들여다보는 것처럼 나는 내 출신지에 대해서 점점 더 디테일하게 말하는 조건에 놓이게 됐다. 급기야 선대 어디쯤에 제주에 정착했냐는 질문에, 족보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로선 기어코 증조 어디쯤이란 거짓말까지 지어내는 데 이르고 말았다. 내 기억 속에 그나마 남아 있는 조상은 증조부 정도인데, 그분들이 제주에 사셨던 건 확실하니까, 그나마 거짓말이 아니고자 증조부쯤 제주에 온 것 같다고 답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 조부가 모두 돌아가셔서 도대체 언제쯤 우리 선조가 제주에 정착해 입도조가 되었는지 나로선 이제 알 길이 없다.

증조부 때 제주에 입도했다면, 나는 제주 사람일까? 뉴욕에서부터 출신을 말할 때마다 늘 불편함이 있었다. 어느 정도의 밀도로 친절히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일단 외국인인 나를 상정해둔다는 태도 때문이었다. 질문자가 원래 뉴요커이든 이주민이든 상관없이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질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향에서 다시 끊임없이 원래 출신이 어딘지 질문받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내 고향이지만, 내게 질문하는 이는 일단 이주민이라고 나를 상정하고 던지는 질문 같아서이고, 실제로 내 고향을 말하면서도 변명처럼 제주 출신이라고 말하게 되는 상황이 불편하다. “원래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느끼는 불편함이 애틀랜타 총기사고 관련 뉴스를 보면서 오는 무거운 마음과 같은 맥락에서 오는 것임을 희미하게 느낀다. 혐오 이전엔 차별이 있고, 차별 이전에 배제, 배제를 위해선 구분짓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출생지는 가장 편리한 구분짓기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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